7월 3일 목장 나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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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기 동안 목자님들 너무 수고 많았습니다.
수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축복합니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본문 - 베드로 전서 5 : 5 -6절
여러분,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을 너무 높인 것입니다. 한 10년 전부터 영화나 책의 주제가 초능력입니다. 앞의 스크린을 보세요.
무얼 강조하지요? 우리 인간에게 놀라운 능력, 위대함이 있다는 거지요.
이런 허깨비 같은 초 인간상?
인간을 너무 높여 참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이 이 시대의 문제입니다. 거기서부터 모든 불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간이 예수 안에서 참 인간의 모습?
나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참으로 복된 일인 겁니다. 동시에 위대한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교만하다는 것을 생각지 못합니다. 교만을 마치 정의감 인양, 때로는 탁월한 카리스마 인양, 어떤 때는 솔직함이라는 말로 위장하면서 교만에 취해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린 비참한 군상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여러분 주위 사람들이 여러분들에게 복을 받는 비결이 뭐지요? 하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뭐라 대답하실 것 같습니까? 아니 목사님, 그건 상식적인 것 아닙니까?
선을 행하고 진실과 부지런함으로 사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 아닙니까? 하실 것입니다.
예, 맞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입니다. 오늘 본문 5절 같이 읽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마귀가 우리를 시험합니다. 우리 신자를 시험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마귀가 우리 신자를 시험하는 방법은 세상 사람들을 시험하는 것과는 달라요.
술좌석으로 명예로 시험하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약과입니다. 우리 신자를 시험해 완전히 무너뜨리려 할 때 마귀가 사용하는 것은 딱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교만입니다.
이 교만을 가지고 시험합니다. 교만이라는 화살을 쏘아 시험하는 거지요. 여기에 맞으면 치명상을 입습니다. 쉽게 일어나지 못합니다.
이걸 맞아 쓰러져 있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 이걸 잊지 마십시오.
사탄이 우리 믿는 사람을 시험할 때 쓰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교만이라는 것을요. 여기에 다 넘어집니다. 금덩이도 아니고 핍박도 사실은 아닙니다. 교만입니다. 이게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하면 많은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은혜를 계속 지켜갈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 예수 믿을 때 있었던 감격? 또 특별한 은혜를 받았을 때 그 은혜 충만한 생활을 계속 지속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교만이 내 심령에 스며들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그럼 여러분, 왜 사람이 이렇게 교만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겸손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중요한 성경 비유가 있습니다. 이사야서에 나옵니다.
도끼가 나무를 찍어 집을 짓습니다. 훌륭한 집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도끼가 말합니다. 나는 위대한 일을 했다! 엄청난 일을 했다!
여러분, 맞습니까? 아니잖아요. 도끼는 도끼일 뿐입니다.
교만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도끼를 만든 자가 있지요. 또 도끼를 손에 들고 사용한 사람이 있기에 집을 짓는 것이 사실은 가능했던 거지요. 도끼는 그냥 쓰임 받은 것뿐이지요. 그래서 이사야는 10장 15절 상 반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도끼가 어떻게 스스로 자랑할 수 있는가?
우리도 무슨 일을 했든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왜요?
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신 것뿐이니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만할 것이 없는 거지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나 같은 것을 사용해 주셨으니!
다시 오늘 본문 5절을 보십시오. 같이 한 번 더 5절 말씀 읽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여기 우리가 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여러분, 이게 무슨 뜻일까요?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그냥 겸손하라! 하면 될 것 같은데?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제 생각에 베드로는 이 편지를 쓰면서 주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에 자기들에게 베푼 성만찬을 떠올린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주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에 성만찬을 베풀지요. 그때 성만찬을 베풀려 하니 제자들의 마음이 너무 교만합니다. 시기, 질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더러운 마음들을 가지고는 성만찬을 행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을 씻기십니다.
그때 주님이 허리에 무엇을 둘렀지요? 수건을 두르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허리를 굽혀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기셨습니다.
자신을 팔려 하는 가룟 유다의 발까지 씻기셨어요.
그때의 주님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던 베드로가 여기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그것은 겸손의 모습이었다!
얼마나 실제적이고 깊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까?
그러면서 베드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합니다. 6절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왜요? 하나님의 손에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6절 말씀 다시 보십시오. 여기 아주 중요한 교훈이 하나가 더 있습니다.
하 반절에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기다릴 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때가 있어요.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시간 말고요.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있다는 겁니다.
그럼으로 여러분, 결코 서두르지 마십시오.
당장 안 된다고 안달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너무 조급해요.
제가 뉴스를 보다가 외국 사람들이 볼까봐 부끄러울 때가 있어요.
얼마 전에 40대 여자분입니다.
버스 타고 가다가 버스가 내리는 곳이 아니에요.
중간에 벨을 눌렀는데 안 세워 주었다고 운전기사를 때립니다.
침까지 뱉어요. 세상에 이런 망령된 행동이 어디 있습니까?
운전하는 사람을 때린다! 다 죽을 수 있는 건데?
입에도 담기 어려운 애기입니다. 너무 조급해요.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이렇게 합니다.
여러분, 좀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75세 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아들을 주마!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금년에 주실 것이다! 내년에 주실 것이다! 생각했는데 아내가 단산할 때까지 아들을 주시지 않습니다. 25년 후에나 주십니다.
여러분, 이게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빨리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한 시간, 하나님이 보실 때에 가장 좋은 때에 주신다는 겁니다. 이걸 인정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겸손을 잃어버린 것 같다면 그 겸손을 다시 찾읍시다.
성령의 은혜를 간구하십시다. 내 남은 삶?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게 해 달라고! 그리고 겸손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자로 살게 해 달라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심을요!
오늘 성경이 약속한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수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축복합니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본문 - 베드로 전서 5 : 5 -6절
여러분,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을 너무 높인 것입니다. 한 10년 전부터 영화나 책의 주제가 초능력입니다. 앞의 스크린을 보세요.
무얼 강조하지요? 우리 인간에게 놀라운 능력, 위대함이 있다는 거지요.
이런 허깨비 같은 초 인간상?
인간을 너무 높여 참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이 이 시대의 문제입니다. 거기서부터 모든 불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간이 예수 안에서 참 인간의 모습?
나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참으로 복된 일인 겁니다. 동시에 위대한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교만하다는 것을 생각지 못합니다. 교만을 마치 정의감 인양, 때로는 탁월한 카리스마 인양, 어떤 때는 솔직함이라는 말로 위장하면서 교만에 취해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린 비참한 군상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여러분 주위 사람들이 여러분들에게 복을 받는 비결이 뭐지요? 하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뭐라 대답하실 것 같습니까? 아니 목사님, 그건 상식적인 것 아닙니까?
선을 행하고 진실과 부지런함으로 사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 아닙니까? 하실 것입니다.
예, 맞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입니다. 오늘 본문 5절 같이 읽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마귀가 우리를 시험합니다. 우리 신자를 시험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마귀가 우리 신자를 시험하는 방법은 세상 사람들을 시험하는 것과는 달라요.
술좌석으로 명예로 시험하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약과입니다. 우리 신자를 시험해 완전히 무너뜨리려 할 때 마귀가 사용하는 것은 딱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교만입니다.
이 교만을 가지고 시험합니다. 교만이라는 화살을 쏘아 시험하는 거지요. 여기에 맞으면 치명상을 입습니다. 쉽게 일어나지 못합니다.
이걸 맞아 쓰러져 있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 이걸 잊지 마십시오.
사탄이 우리 믿는 사람을 시험할 때 쓰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교만이라는 것을요. 여기에 다 넘어집니다. 금덩이도 아니고 핍박도 사실은 아닙니다. 교만입니다. 이게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하면 많은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은혜를 계속 지켜갈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 예수 믿을 때 있었던 감격? 또 특별한 은혜를 받았을 때 그 은혜 충만한 생활을 계속 지속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교만이 내 심령에 스며들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그럼 여러분, 왜 사람이 이렇게 교만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겸손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중요한 성경 비유가 있습니다. 이사야서에 나옵니다.
도끼가 나무를 찍어 집을 짓습니다. 훌륭한 집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도끼가 말합니다. 나는 위대한 일을 했다! 엄청난 일을 했다!
여러분, 맞습니까? 아니잖아요. 도끼는 도끼일 뿐입니다.
교만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도끼를 만든 자가 있지요. 또 도끼를 손에 들고 사용한 사람이 있기에 집을 짓는 것이 사실은 가능했던 거지요. 도끼는 그냥 쓰임 받은 것뿐이지요. 그래서 이사야는 10장 15절 상 반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도끼가 어떻게 스스로 자랑할 수 있는가?
우리도 무슨 일을 했든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왜요?
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신 것뿐이니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만할 것이 없는 거지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나 같은 것을 사용해 주셨으니!
다시 오늘 본문 5절을 보십시오. 같이 한 번 더 5절 말씀 읽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여기 우리가 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여러분, 이게 무슨 뜻일까요?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그냥 겸손하라! 하면 될 것 같은데?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제 생각에 베드로는 이 편지를 쓰면서 주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에 자기들에게 베푼 성만찬을 떠올린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주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에 성만찬을 베풀지요. 그때 성만찬을 베풀려 하니 제자들의 마음이 너무 교만합니다. 시기, 질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더러운 마음들을 가지고는 성만찬을 행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을 씻기십니다.
그때 주님이 허리에 무엇을 둘렀지요? 수건을 두르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허리를 굽혀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기셨습니다.
자신을 팔려 하는 가룟 유다의 발까지 씻기셨어요.
그때의 주님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던 베드로가 여기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그것은 겸손의 모습이었다!
얼마나 실제적이고 깊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까?
그러면서 베드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합니다. 6절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왜요? 하나님의 손에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6절 말씀 다시 보십시오. 여기 아주 중요한 교훈이 하나가 더 있습니다.
하 반절에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기다릴 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때가 있어요.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시간 말고요.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있다는 겁니다.
그럼으로 여러분, 결코 서두르지 마십시오.
당장 안 된다고 안달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너무 조급해요.
제가 뉴스를 보다가 외국 사람들이 볼까봐 부끄러울 때가 있어요.
얼마 전에 40대 여자분입니다.
버스 타고 가다가 버스가 내리는 곳이 아니에요.
중간에 벨을 눌렀는데 안 세워 주었다고 운전기사를 때립니다.
침까지 뱉어요. 세상에 이런 망령된 행동이 어디 있습니까?
운전하는 사람을 때린다! 다 죽을 수 있는 건데?
입에도 담기 어려운 애기입니다. 너무 조급해요.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이렇게 합니다.
여러분, 좀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75세 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아들을 주마!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금년에 주실 것이다! 내년에 주실 것이다! 생각했는데 아내가 단산할 때까지 아들을 주시지 않습니다. 25년 후에나 주십니다.
여러분, 이게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빨리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한 시간, 하나님이 보실 때에 가장 좋은 때에 주신다는 겁니다. 이걸 인정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겸손을 잃어버린 것 같다면 그 겸손을 다시 찾읍시다.
성령의 은혜를 간구하십시다. 내 남은 삶?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게 해 달라고! 그리고 겸손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자로 살게 해 달라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심을요!
오늘 성경이 약속한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다음글5월 16일 목장 나눔 2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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