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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나눔(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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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새새
댓글 0건 조회 55회 작성일 25-03-13 09:17

본문

목자님들 이번 주도 주안에서 화이팅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설교 후 찬양은 행복입니다.

감사합니다.



교회란 무엇인가(1) - 동일한 시민, 하나님의 권속?

본문 - 에베소서 2 : 19절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누구끼리 제일 많이 싸웁니까? 친구들끼리입니까? 아니지요.

형제들끼리 제일 많이 싸웁니다.

저의 아이들도 클 때 보면 연년생인데 그냥 저들끼리 얼마나 싸우는지 제가 정신이 없었습니다.

 

부부싸움은 뭐라고요? 칼로 물 베기입니다. 맞습니다.

칼로 물 베기입니다.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형제들끼리 싸워도 헤어지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아들 한 대 때렸다고 해서 아들이 집 나가지 않습니다.

 

가족이란 그런 겁니다.

부부니까 서로가 보는 앞에서도 옷도 홀라당 벗기도 하고 갈아입기도 하는 것 아닙니까?

 

근데 혹시 이런 부부 있습니까?

남편이 옷을 자기 앞에서 갈아입는데 아니 결혼한 지 10년밖에 안 되었는데 이따위로 할 거요? 하는 아내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 그렇죠? 더이상 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같은 편인 겁니다. 오른손, 왼손의 관계이고 손등, 손바닥의 관계인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 간의 관계가 또한 그렇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란 곳은 가장 편한 곳이어야 합니다. 아니 가장 기쁜 곳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날 뿐만 아니라 동일한 하나님의 식구 된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있기 때문에 그 기대가 무너질 때 많은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 친구 중에 산을 좋아하는 산 사나이가 있습니다. 시간만 나면 산에 가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소개할 때 나는 산 사나이다 하면서 얼마나 뽐을 잡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이 친구가 맨 날 하는 이야기가 이런 겁니다.

 

좁은 세상에서 아웅다웅 하며 싸우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가?

나는 산사나이다!

 

제가 이 말 한마디만 했습니다.

 

넌 산 사나이가 아니고 사실은 비겁자다! 그랬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들 기세였습니다.

그때 제가 이런 말은 더했습니다.

 

자연을 좋아하는 것은 인정한다.

근데 네가 자연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자연은 기대감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배신도 하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겠습니까? 좀 어렵습니까?

뒤집어 이야기한다면 인간에게 당한 배신감 때문에 산에 오르는 겁니다.

예, 인간은 배신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기대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인간은 배신하는 존재인 동시에 인간은 기대할 수 있는 존재이지요.

물론 부디 껴 살 때 다툼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 상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상처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대함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겁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그런 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식구들이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권속이라는 말 앞에 또 하나의 단어가 나오지요?

예, 시민입니다.

 

여러분, 우리 신자를 설명하면서 권속이라는 말과 더불어서 시민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단어를 쓰는 것은 이 권속이라는 말로 신자 됨의 복을 다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시민이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어떤 나라의 국민이라는 말입니다.

빌립보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지라!

 

우리가 하늘 시민이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에 시민이라는 단어를 쓰는 겁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학생들이 영어 공부한다고 학원도 많이 다녔습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미국 방송 A F K N을 많이 봤습니다.

거기서 이런 말이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 뒤에 국가가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참 부러운 말이었습니다.



여러분 뒤에 미국이라는 국가가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실제 미국 시민이 어떤 나라에 가서 부당한 일을 당하게 되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국가에 대한 모독이 됩니다. 그래서 국가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 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몇 년 된 것 같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난 다음에 저녁 뉴스를 보는데 미국 여자분입니다. 이분이 미국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 하나를 낳았습니다.

 

근데 어떤 이유에서 그랬는지 그 뉴스에서 말하지 않았는데 이 부인이 그 아이를 데리고 브라질로 간 겁니다.

무슨 갈등이 심하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 부인이 거기 가서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겁니다.

 

근데 더 큰 문제는 이 여자분이 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만 남겨진 겁니다. 그 남겨진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브라질 의붓아버지가 아이를 미국 아버지한테 주면 될 것 같은데 절대 못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로 이 아이의 진짜 아버지인 미국 사람과 브라질 아버지 간의 분쟁이 된 겁니다.

 

참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대단한 게 어떻게 보면 개인의 문제 아닙니까?

근데 그 일에 대통령까지 나서더라고요.

 

그 아이를 미국 아빠한테 돌려보내지 않으면 무역 관세 혜택 주는 것을 철폐하겠다 하면서 으름장을 놓더라고요.

제가 그걸 보고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결국 아이는 미국 친아빠한테 돌아갔습니다.

 

너희는 하늘나라의 시민이요, 권속이다. 내 가족이다.

너희가 어디를 가든지 너희를 건드리는 자는 나를 건드리는 것이다!

아시겠습니까?

 

성경이 성도에 대해 어떤 약속을 하고 있는가? 그걸 잘 알아야 합니다.

근데 어떤 것들을 약속하고 있는지 성도들이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성경에 있는 몇 구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이런 구절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얼마나 복된 존재인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편 3편을 찾아보십시오. 다 읽으면 좋은데 시간 관계상 다 읽을 수 없고요. 6, 7, 8절 보십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여러분, 이게 엄청난 말입니다.

지금 다윗이 하고 있는 이 말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주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이 말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천만 인이 나를 둘러서서 나를 치려해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일어나 나를 지켜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주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이 고백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다윗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신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어떤 신자도 여기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금 다윗이 쓴 이 시 속에 등장하는 표현들이 다 그런 것들입니다.

이걸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또 하나 더 살펴볼까요? 스가랴 2장 8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정말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범하는 자들은 뭘 범하는 것이라고요?

하나님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인 우리를 어떻게 대접하시는 아시겠습니까?

로마서식으로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로마서 8장 31, 32절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 하겠느냐!

 

이 말의 의미를 아시겠지요?

이 말씀 그대로 우리에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그의 아들을 주셨는데 그의 아들보다 못한 것이야 왜 안 주시겠습니까?

 

신자란 누구를 막론하고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그의 특권을 이렇게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 우리의 신분적인 특권들입니다. 아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신자가 갖는 특권입니다.

 

여러분, 사탄이 우리를 제일 미혹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꼭 이렇게 묻습니다.

 

네가 그 꼴로 목자를 하냐? 네가 그런 꼴로 기도를 하냐?

그런다고 응답이 되냐? 네 꼬락서니를 알아라! 꼭 그렇게 지적합니다.

예,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무슨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의지해서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여기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이제 결론을 내립시다.

우리 신앙에 있어서 우리를 담대하게 하거나 우리를 좌절케 하는 것들이 결국 무엇입니까?

언제나 우리 기분 아닙니까?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근거로 쓰고 있습니다.

 

무엇이 율법적인 사람입니까? 은혜를 모른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습니다. 면목 없는 일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라 말하기 차마 부끄럽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죄송합니다! 얼굴도 바로 들 수 없는 부족한 사람입니다만 어쨌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와서 하나님 아버지 하지 아저씨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지었다 해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아버지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왜 그러냐?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부르지도 않고 응답도 없다는 겁니다.

빼앗길 수 없는 지위입니다. 놓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가 읽었던 시편 3편이나 스가랴 2장의 말씀에 있었던 것 같이 우리를 건드리는 자는 우리의 대장되신 하나님을 건드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에게 해당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 보십시오.

그래 놓고 이 말씀을 보시면 더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같이 오늘 본문 19절 읽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먼저 간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입니다.

아브라함같이 다니엘 같이 동일한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브라함은 어떤 아브라함입니까?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입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갈지언정 하나님 믿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 한 사람입니다.

 

또한 엘리야 같은 사람입니다.

팔백 오십 명의 우상 섬기는 제사장들과 맞서서 홀로 하나님의 편에서 갈 멜 산 전투를 승리로 이끈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렇게 시민으로 불렀기 때문에 완성된 모습입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얼마나 형편이 없었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그 사람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들보다 우리를 덜 보살펴 주거나 우리를 덜 쳐주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을 갈 대아 우르에서 부르신 것처럼 우리를 불러 이 자리에 앉게 하신 것입니다.

 

그럼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의 책에 기록될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고야 말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는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해 살아갈 때 어떤 낙관을 만나다 하더라도 절대 낙심하지 마십시오.

스스로를 포기하셔도 안 됩니다. 여러분은 포기할 권리가 없습니다.

 

하늘나라의 시민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은 여러분을 여러분 되게 하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자기 나라를 포기하는 것만큼 자기 나라에 대한 모욕이 어디 있습니까?

다른 나라에 망명을 가요?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리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동일한 하늘나라에 권속 되고 시민 된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것들이고 놓치지 말아야 하고

반드시 누려야 할 신자들의 특권인 것을 이 아침에 깊이 생각하며 이 한 해 남은 시간들 더 힘 있게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들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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