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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목장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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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새새
댓글 0건 조회 267회 작성일 24-06-1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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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전반기 목장 모임 마지막 주입니다.
그동안 수고해 주신 목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주도 주안에서 승리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본문 – 고 후 6장 1 -10절

 

여러분 옆에 앉으신 분 보며 환한 미소로 서로 이렇게 권면합니다.

진짜 은혜는 은혜를 은혜로 아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은혜를 은혜로 아는 것이 진짜 은혜라는 거지요.

 

우리는 은혜를 은혜로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를 은혜로 아는 자였습니다.

그의 유명한 고백에서 이것이 잘 나타나지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만약 그에게 주의 은혜가 없었다면 그는 평생 핍박자로 살았을 겁니다.

우리도 바울과 동일한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를 평생 감사하며 사는 여러분들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유명한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 추리 소설이 있습니다.

아주 깊은 뜻을 가진 소설입니다. 제목이 다시 오신 예수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들이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이 소설을 쓴 것입니다.

 

예수님께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이 그 뒤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 뒤의 삶이 어떠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병을 고쳐 준 한 사람을 찾아가셨습니다.

어 근데 이 사람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주정뱅이가 되었는지 물으셨습니다.

이 사람이 하는 말을 좀 들어 보십시오.

 

제가 본래 앉은뱅이였는데 예수님께서 길을 지나가시다가 저를 일으켜 주셨잖아요.

한평생 앉은뱅이로 길거리에서 그저 구걸하던 사람인데 제가 성한 몸이 되었습니다.

 

거기까지 좋았는데 그 앉은뱅이라는 게 말입니다.

당당하게 얻어먹을 수 있는 권한이 있잖아요. 손을 내밀면 되니까요.

 

이렇게 편하게 살았는데 이제 건강한 몸이 되고 나니까 아무도 도와주지 않더라는 겁니다.

게다가 자본도 없고 기술도 없고 그래서 그만 허랑방탕하면서 이렇게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말을 듣고 그 사람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사람 되라고 일으켜 주었더니 어쩌다가 그런 신세가 됐냐?

 

예수님이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가 보았더니 깡패 두목이 되어 있는 겁니다.

너는 어떻게 해서 깡패 두목이 되었나? 했더니 그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예수님! 저는 본래 시각 장애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셔서 이렇게 성한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근데 예수님, 제가 눈을 감고 살 때는 몰랐는데 눈을 뜨고 세상을 한 번 봤더니

이 세상이 너무 아니꼽고 너무 부조리하고 못된 세상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화가 나서 깡패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밝은 세상을 보며 바르게 살라고 고쳐주었더니 이게 뭐냐?



너는 은혜를 헛되이 받은 자로다!



오늘 본문 1절 말씀도 보십시오. 바로 그 이야기를 합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1절 같이 읽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분명히 귀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엄청난 사랑과 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근데 그 은혜를 받고 난 다음에 모습이 좋지 않습니다. 오히려 은혜를 받지 못한 때만도 못합니다.

 

귀한 은혜를 받았으면 그 은혜를 더 큰 은혜로 발전시켜 가야 하는데

그 받은 은혜를 망각하므로 더 악해지고 더 추해지는 모습으로 살아가더라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를 헛되게 만드는 거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를 은혜로 안다는 것? 정말 중요한 겁니다.

이것을 모르면 영영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은혜로 알고 그 은혜를 인식하며 산다는 것? 너무 중요한 거지요.

근데 문제는 그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그걸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다 잃고 나서야 안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이 이렇게 못되어 먹었습니다.

 

건강이 소중한 것? 잃어버리고 나서야 알지 않습니까?

병원에 입원해서야 그때 아는 것입니다.

사람의 소중함도 그 소중한 사람들 다 떠나고 난 다음에야 안다는 겁니다.

이 얼마나 우둔하고 바보스러운 일입니까?

다시 말해 고난 중에 알게 됩니다. 배고플 때 알고 병들었을 때 압니다.

 

같은 기도를 해도 건강할 때 기도와 병들었을 때 기도가 다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됩니다.

비로소 은혜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겸손할 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근데 나 스스로 겸손하지 못합니다.

모든 사건을 통해 낸 연약함을 발견하게 될 때 그때 겸손하게 되고 비로소 은혜를 은혜로 알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받은 은혜를 은혜로 알고 그 은혜에 늘 감사하고 겸손히 여러분의 남은 삶 살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은혜를 은혜로 알았다가 중간에 차차 세월이 가면서 율법적 관계로 바뀌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선한 일을 했고 내가 의롭게 살았고 그래서 교만해집니다.

 

교만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전부가 은혜가 아니고 보상이기 때문이고 그 보상도 자기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으로 살게 됩니다.

 

참으로 불쌍합니다. 이런 사람은 구제 불능입니다.

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3절에서 바울이 이런 말을 합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말을 바꾸면 은혜로 시작했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입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

처음 예수 믿을 때는 오늘 찬송을 불렀던 것처럼 내 죄 사함받고 구원받은 것에 감사 감격합니다만

예수 믿어가면서 선한 일을 하고 봉사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자기 의로 사는 줄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럼 받은 은혜는 망각하고 율법적 관계로 바뀌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강조합니다. 은혜로 출발했다가 이제 율법으로 마치겠느냐?

도중에 변질 되면 안 됩니다.

처음도 하나님의 은혜요, 마지막도 하나님의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선한 일을 하고 의롭게 살고 좋은 일 한 것? 그것도 은혜입니다.

그것이 결코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받는 어떤 보상의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대로가 은혜입니다.

 

이미 은혜 속에 살았고 현재가 은혜요 현실 속에 은혜의 간증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그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아는 자로 그 은혜에 감격하는 자로 한평생 사는 여러분들 다 되길 축복합니다.

 

하나 더 생각할 것은 8절에서 10절 말씀입니다.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여러분, 이 말씀? 8절 하 반절부터 하는 말씀을 쭉 보십시오.

그 내용이 어떻습니까? 아주 역설적이지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여기 속이는 이라는 말과 뒤에 참되고 하는 말은 반대 되는 말입니다.

이 두 단어는 같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압니다.

 

속이는 자인데 어떻게 참된 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럼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를 이야기하고 영원한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이 땅에만 생각을 두고 사는 자가 볼 때는 꼭 속이는 자 같습니다.

 

저도 가보지 못한 천국을 가지고 뭘 자꾸 이야기하냐?

아니 가보고 좋다고 말해야지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자꾸 천국을 말하냐? 속이는 자 같습니다.

그러나 참되다는 겁니다. 참된 진리이니까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사에 보면 초대 성도들이 한때 식인종으로 오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성찬식을 할 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자녀요? 하니까 수상한 거지요.

 

이 사람들, 사람 잡아먹는 사람들 아닌가?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

이 사람들 식인종이네!

 

그런 오해가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것은 참이지만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이 들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겁니다.

 

그다음에 무명한 자가 같으나 유명하다 합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십시오. 아주 무명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생각할 때 바울이야말로 얼마나 유명한 자입니까?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분명 걱정거리가 있을 것 같은데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기 같으면 그 문제로 며칠을 고민할 것 같습니다.

어 근데 이 믿는 사람들을 보니 그걸 이겨냅니다.

 

어떻게요? 하나님께 그 문제를 맡기고 이겨내더라는 것입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기쁨이 있습니다. 비밀한 기쁨이 있습니다.

기도 응답의 기쁨이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심으로 이긴 간증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고난이 와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거지요.

 

그리고 10절 마지막 말씀 요?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받고 참 진리 되신 주님을 알았기에

실은 모든 것을 가진 자, 가장 중요한 분을 소유한 자가 된 것이지요.

 

여러분이 바로 그런 복된 존재가 되는 은혜를 받은 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우리 신자는 어떤 자인가?

 

외적으로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 같으나 실은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참된 진리 되신 예수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받고 사는 그러므로 실은 다 가진 자로 그 주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축복하는?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무명이지만?

예수님 때문에 실은 유명한 자요. 다 가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사람도 부러워하지 않으며 감사로 살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여러분의 남은 삶 감사로 살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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