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목장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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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5월달입니다.
늘 섬김에 감사합니다.
나는 기도할 뿐이라!
본문 – 시편 109편 1- 13절
얼마 전에 한 성도님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천국 가면 우리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남편을 알아보고 부인을 알아보고 자식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왜 그런 질문을 하시냐 하니까?
지난 명절 때 온 친척들이 모였는데 거기서 이런 논쟁이 있었다는 겁니다.
어떤 분은 알아볼 것이다!
또 어떤 분은 천국에선 주 안에서 한 가족인데 세상에서의 가족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서로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합니다만?
천국 가보면 이 문제를 확실히 풀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중에 천국에 갔을 때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혹시 천국 가면 꼭 만나보고 싶은 분이 있습니까?
특히 하나님 만났을 때 하나님께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제가 어느 교회 헌신 예배 가서 이 질문?
여러분은 천국 갔을 때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했더니?
나이 드신 한 권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목사님, 저는 복길이 만나고 싶어요?
저는 복길이가 먼저 천국 가신 남편인 줄 알았는데 아니고요. 개더라고요. 자기가 예전에 키웠던 개, 그 개 만나고 싶다는 겁니다.
저도 천국 가서 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갖게 된 궁금한 것들? 천국 가서 확인하고 싶은 거지요.
제일 궁금한 것은 도대체 우리 예수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는데 주님의 모습이 어떤 모습일까?
그게 제일 궁금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궁금한 게 오늘 본문의 시를 지은 다윗입니다.
성경에서 볼 때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지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그런 인정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그를 만나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천국 가서 이 다윗을 만나 애기를 한번 들어 보는 것이 우리의 큰 기쁨 중에 하나 일 겁니다.
우리는 다윗의 대표적인 시를 들라 하면 시편 23편을 듭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이 시편 109편도 그 시에 버금가는 시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기도의 영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4절 보십시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이 구절에 대한 우리말 번역은 이렇습니다.
내가 베푼 사랑에 대해 그들은 미움으로 보답합니다.
그러나 나는 기도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이 한 구절에서 무엇을 느끼게 됩니까?
다윗이 처한 힘든 상황이지요.
다윗은 자기를 대적하는 자들을 사랑으로 대해 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기를 공격하는 사람들로 인해 힘들어하는 다윗을 볼 수 있잖아요.
그때 다윗이 뭐하겠다고 고백합니까? 나는 기도할 뿐이라!
그러니까 그들의 악한 모습에 같이 맞대응하며 응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는 거지요.
하나님께 자기의 아픈 마음을 아뢰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살면서 가지게 되는 여러 가지 아픔들, 상처들, 자신의 마음에 담지 않고 하나님께 가져다 기도로 풀겠다는 겁니다. 참 귀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무엇을 마음에 품고 있는가? 그게 참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안 좋은 걸 품고 있으면 안 좋은 게 결국에는 밖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품고 있으면 그게 그 사람의 속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그게 나중에는 분노로, 짜증으로 표출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품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안 좋은 것을 마음에 품으면 그게 죄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여간에 안 좋은 것을 품으면 안 됩니다. 다 죄로 발전하게 됩니다.
다들 에베소서 4장 26, 27절을 찾아보십시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이 말씀도 잘 보시면 분? 낼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러나 해가 지도록 뭐하지 말라? 품지 마라!
그 이유가 뭡니까? 마귀에게 틈을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옆 사람 보면서 이렇게 권면합시다.
안 좋은 것은? 그게 뭐든지? 우리 마음에 품지 맙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안 품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될 게 무엇인가?
오직 이거 하나밖에 없습니다. 나는 기도할 뿐이라!
하나님께 기도로 다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뭔가를 잘못 먹어 얹히게 되면 어떻습니까?
머리도 아프고 가슴도 답답하지요.
그때 제일 좋은 게 뭡니까? 먹은 걸 다 토해내는 거잖아요.
근데 그렇게 토할 때 이런 분들 계십니까?
어제 저녁때 비싼 소고기를 먹었는데 그게 언쳤습니다.
그때 고기는 아까우니까 그것은 토하지 않고 상추 같은 채소만 토하는 분들 있습니까? 그거 안 됩니다.
토할 때는 다 토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토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분노, 짜증, 답답함! 다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토할 때 이런 표현도 나올 수 있습니다.
누구 좀 혼내 주세요? 그 사람 어떻게 좀 조치해 주세요?
그런 기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 내어놓지 않으면 누구에게 말하려고 합니까?
중요한 것은 진실하게 내 마음 그대로를 하나님께 아뢰는 겁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다윗이 얼마나 솔직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는지 모릅니다.
9절부터 보십시오. 다윗이 어떻게 기도하는가? 9절, 10절입니다.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다윗이 자기의 마음을 그대로 표출하지요. 얼마나 적나라한지 모릅니다.
자기 원수의 아내들을 어떻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합니까?
과부가 되게 해 달라! 아이들은요? 고아가 되게!
참 심한 기도를 하고 있지요?
근데 13절로 가면 더 심한 기도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
원수의 씨를 말려 달라는 겁니다.
얼마나 솔직하게 자기의 마음을 그대로 하나님께 고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니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이 무엇입니까?
타성에 젖어 기도가 그냥 하나의 형식이 되기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도하는 데도 답답하게 됩니다.
열심히 뭔가 교회에서 봉사는 하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무거운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상한 마음이 마음에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불순물들이 다 나오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옛사람은 다 벗어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는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지요.
끝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으로 진솔하게 고백할 때 얻게 되는 유익?
우리의 관점이 달라집니다. 보는 시각이 바뀝니다.
여러분, 시편을 잘 보십시오. 모든 시편이 다 그렇습니다.
시편 자체가 기도라는 것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제가 예전에 시편을 읽을 때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게 뭔가 하면 처음 시작할 때는 거의 대부분이 뭐가 어떻고 저떻고 그럽니다. 내 마음이 너무 낙심이 된다고!
언제까지 이런 고통을 주실 겁니까? 왜 이런 고통을 내가 당해야 합니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막 하나님을 향해 원망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하나 예를 들면 시편 22편 요. 시편 22편을 찾아보십시오. 1절을 보십시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처음에는 이렇게 나갑니다.
하나님, 왜 이럽니까? 왜 나를 돕지 않습니까? 왜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해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그런데 뒤로 가면서 보십시오. 뭐라 그럽니까? 24절을 보십시오.
그는 곤고한 자의 곤 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처음과 끝이 다르지요. 달라도 너무 다르지요? 왜 그럴까요?
처음에는 그렇게 하나님께 답답함을 가지고 자기의 마음을 토설하며 나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나아가니까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가운데 다른 관점을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그걸 보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위로를 주십니다. 이길 힘도 주십니다.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질 것에 대한 확신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토하는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마음에 어떤 아픔이 있습니까? 상처가 있습니까?
품지 마십시오. 담고 있으면 안 됩니다. 시편 62편 8절의 말씀입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시로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께 여러분의 마음을 고백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강이 넘치는 여러분들 되셔서 다른 영혼들을 살리는 삶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 –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늘 섬김에 감사합니다.
나는 기도할 뿐이라!
본문 – 시편 109편 1- 13절
얼마 전에 한 성도님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천국 가면 우리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남편을 알아보고 부인을 알아보고 자식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왜 그런 질문을 하시냐 하니까?
지난 명절 때 온 친척들이 모였는데 거기서 이런 논쟁이 있었다는 겁니다.
어떤 분은 알아볼 것이다!
또 어떤 분은 천국에선 주 안에서 한 가족인데 세상에서의 가족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서로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합니다만?
천국 가보면 이 문제를 확실히 풀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중에 천국에 갔을 때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혹시 천국 가면 꼭 만나보고 싶은 분이 있습니까?
특히 하나님 만났을 때 하나님께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제가 어느 교회 헌신 예배 가서 이 질문?
여러분은 천국 갔을 때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했더니?
나이 드신 한 권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목사님, 저는 복길이 만나고 싶어요?
저는 복길이가 먼저 천국 가신 남편인 줄 알았는데 아니고요. 개더라고요. 자기가 예전에 키웠던 개, 그 개 만나고 싶다는 겁니다.
저도 천국 가서 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갖게 된 궁금한 것들? 천국 가서 확인하고 싶은 거지요.
제일 궁금한 것은 도대체 우리 예수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는데 주님의 모습이 어떤 모습일까?
그게 제일 궁금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궁금한 게 오늘 본문의 시를 지은 다윗입니다.
성경에서 볼 때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지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그런 인정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그를 만나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천국 가서 이 다윗을 만나 애기를 한번 들어 보는 것이 우리의 큰 기쁨 중에 하나 일 겁니다.
우리는 다윗의 대표적인 시를 들라 하면 시편 23편을 듭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이 시편 109편도 그 시에 버금가는 시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기도의 영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4절 보십시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이 구절에 대한 우리말 번역은 이렇습니다.
내가 베푼 사랑에 대해 그들은 미움으로 보답합니다.
그러나 나는 기도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이 한 구절에서 무엇을 느끼게 됩니까?
다윗이 처한 힘든 상황이지요.
다윗은 자기를 대적하는 자들을 사랑으로 대해 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기를 공격하는 사람들로 인해 힘들어하는 다윗을 볼 수 있잖아요.
그때 다윗이 뭐하겠다고 고백합니까? 나는 기도할 뿐이라!
그러니까 그들의 악한 모습에 같이 맞대응하며 응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는 거지요.
하나님께 자기의 아픈 마음을 아뢰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살면서 가지게 되는 여러 가지 아픔들, 상처들, 자신의 마음에 담지 않고 하나님께 가져다 기도로 풀겠다는 겁니다. 참 귀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무엇을 마음에 품고 있는가? 그게 참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안 좋은 걸 품고 있으면 안 좋은 게 결국에는 밖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품고 있으면 그게 그 사람의 속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그게 나중에는 분노로, 짜증으로 표출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품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안 좋은 것을 마음에 품으면 그게 죄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여간에 안 좋은 것을 품으면 안 됩니다. 다 죄로 발전하게 됩니다.
다들 에베소서 4장 26, 27절을 찾아보십시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이 말씀도 잘 보시면 분? 낼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러나 해가 지도록 뭐하지 말라? 품지 마라!
그 이유가 뭡니까? 마귀에게 틈을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옆 사람 보면서 이렇게 권면합시다.
안 좋은 것은? 그게 뭐든지? 우리 마음에 품지 맙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안 품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될 게 무엇인가?
오직 이거 하나밖에 없습니다. 나는 기도할 뿐이라!
하나님께 기도로 다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뭔가를 잘못 먹어 얹히게 되면 어떻습니까?
머리도 아프고 가슴도 답답하지요.
그때 제일 좋은 게 뭡니까? 먹은 걸 다 토해내는 거잖아요.
근데 그렇게 토할 때 이런 분들 계십니까?
어제 저녁때 비싼 소고기를 먹었는데 그게 언쳤습니다.
그때 고기는 아까우니까 그것은 토하지 않고 상추 같은 채소만 토하는 분들 있습니까? 그거 안 됩니다.
토할 때는 다 토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토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분노, 짜증, 답답함! 다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토할 때 이런 표현도 나올 수 있습니다.
누구 좀 혼내 주세요? 그 사람 어떻게 좀 조치해 주세요?
그런 기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 내어놓지 않으면 누구에게 말하려고 합니까?
중요한 것은 진실하게 내 마음 그대로를 하나님께 아뢰는 겁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다윗이 얼마나 솔직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는지 모릅니다.
9절부터 보십시오. 다윗이 어떻게 기도하는가? 9절, 10절입니다.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다윗이 자기의 마음을 그대로 표출하지요. 얼마나 적나라한지 모릅니다.
자기 원수의 아내들을 어떻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합니까?
과부가 되게 해 달라! 아이들은요? 고아가 되게!
참 심한 기도를 하고 있지요?
근데 13절로 가면 더 심한 기도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
원수의 씨를 말려 달라는 겁니다.
얼마나 솔직하게 자기의 마음을 그대로 하나님께 고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니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이 무엇입니까?
타성에 젖어 기도가 그냥 하나의 형식이 되기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도하는 데도 답답하게 됩니다.
열심히 뭔가 교회에서 봉사는 하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무거운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상한 마음이 마음에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불순물들이 다 나오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옛사람은 다 벗어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는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지요.
끝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으로 진솔하게 고백할 때 얻게 되는 유익?
우리의 관점이 달라집니다. 보는 시각이 바뀝니다.
여러분, 시편을 잘 보십시오. 모든 시편이 다 그렇습니다.
시편 자체가 기도라는 것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제가 예전에 시편을 읽을 때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게 뭔가 하면 처음 시작할 때는 거의 대부분이 뭐가 어떻고 저떻고 그럽니다. 내 마음이 너무 낙심이 된다고!
언제까지 이런 고통을 주실 겁니까? 왜 이런 고통을 내가 당해야 합니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막 하나님을 향해 원망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하나 예를 들면 시편 22편 요. 시편 22편을 찾아보십시오. 1절을 보십시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처음에는 이렇게 나갑니다.
하나님, 왜 이럽니까? 왜 나를 돕지 않습니까? 왜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해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그런데 뒤로 가면서 보십시오. 뭐라 그럽니까? 24절을 보십시오.
그는 곤고한 자의 곤 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처음과 끝이 다르지요. 달라도 너무 다르지요? 왜 그럴까요?
처음에는 그렇게 하나님께 답답함을 가지고 자기의 마음을 토설하며 나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나아가니까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가운데 다른 관점을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그걸 보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위로를 주십니다. 이길 힘도 주십니다.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질 것에 대한 확신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토하는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마음에 어떤 아픔이 있습니까? 상처가 있습니까?
품지 마십시오. 담고 있으면 안 됩니다. 시편 62편 8절의 말씀입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시로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께 여러분의 마음을 고백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강이 넘치는 여러분들 되셔서 다른 영혼들을 살리는 삶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 –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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