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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목장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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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새새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5-09-13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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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한 주간도 주님으로 인해 복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성품 배우기 - 자족하는 마음

본문 – 빌립보서 4장 10 – 13절

 

인간의 지식이란 내가 경험한 것만큼만 내 지식이 됩니다.

들어도 보아도 배워도 그건 내 지식이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기억하고 있는 것까지도 내 지식이 아닙니다.

 

내가 실제로 내 몸으로 경험하고 나서야 그거구나! 비로소 깨닫는 겁니다.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경험해야 자기 지식이 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이 경험이라는 것이 단회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험이든 엄격히 말하면 단회적인 겁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죽음이라고 하는 경험? 단 한 번밖에 없는 경험입니다.

죽음이 뭔지 경험하고 싶다고요? 죽으면 끝입니다. 아는 순간 끝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뵙겠다고요? 하나님을 만나야 하겠다고 하는데 좋습니다. 근데 문제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무릇 우리가 경험하는 중요한 사건들이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경험들을 두 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을 보고 그게 나에게도 일어날 것으로 알고 자기에게 적용하며 사는 사람이지요. 그 사람은 정말 복되게 살아갈 겁니다.

 

오늘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지식이라는 것? 보아서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보기만 해도 압니다. 그러면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듣고 압니다. 보지 않아도 됩니다. 듣기만 해도 되요.

누군가가 본 것을 말해주면 그것이 내 것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일부만 경험하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다 보아야 할 것이 없습니다.

 

한 가지만 보면 다 알았다 하고 그다음에 경험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입니다.

근데 이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의 경험을 나의 경험으로 삼고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반드시 내가 경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책을 통해 성경을 통해 듣고 보고 간접 경험한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 사람이 세상을 지혜롭게 복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아봐야 아이를 압니까?

산부인과 남자 의사가 아이 낳아보고 아이를 아는 겁니까?

생전 안 낳아봤어도 오히려 낳아본 사람보다 더 잘 압니다.

 

꼭 경험해 봐야 안다는 애기는 영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내가 받아들일 때 내가 경험한 것보다 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지혜로운 사람인 겁니다.

 

여러분 모두는 이런 지혜로운 자의 삶 꼭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자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잘 봐 보십시오.

특별히 13절 말씀이 중요합니다. 이 말씀을 한 번 더 읽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러분, 이 말씀? 이 13절 말씀? 이 구절은 신자들이 아주 좋아하는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그 이유가 하 반절에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내용 때문입니다.

근데 뜻밖에도 이 구절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진 말씀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이 빌립보서는 옥중 서신중의 하나로 로마의 감옥에 수감 된 상태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누가 면회를 왔는가 하면 빌립보 교인들입니다.

 

이들이 위문품을 가지고 온 겁니다. 산 넘고 물 건너 찾아온 것이지요.

우리식으로 하면 서울에서 대전을 거쳐 대구까지 온 것입니다.

그 물품을 받으면서 바울이 한 말이 바로 13절 말씀입니다. 한 번 더 13절 읽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러분, 이렇게 볼 때 바울이 어떤 의미로 이 말씀을 한 것 같습니까?

왜 그들이 가져다준 것이 고맙지 않겠습니까? 고맙지요. 감사하지요.

그러나 나는 이렇게 산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바울의 고백의 의미를 알 수 있겠습니까? 이런 고백입니다.

지금 사울 바울이 가는 이 믿음의 길?

그 길은 세상의 것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것으로 방해를 받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기 11, 12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같이 11, 12절 읽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 바울의 고백과 이어나오는 바울의 그 유명한 고백을 같이 봐 보십시오.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알 수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바울의 고백은 이런 것입니다.

 

나는 내가 비천에 처할 줄로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하는 이 바울의 확신은

풍부한 것이 도움이 되지도 않고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이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믿음의 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가고자 하는 이 신앙의 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예수님 안에서 가능한 일이지 세상의 것으로 원리가 되거나 근거나 힘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더 이해가 될 것입니다.

돈으로 내 신앙을 쌓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무엇으로 내 신앙이 방해를 받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돈이지요.

돈이 없으면 그 신앙은 무너지게 되는 거지요.

돈이 그 사람의 신앙의 근거이니까요.

 

그러나 돈으로 쌓은 것이 아니면 돈이 없다고 해서 그 신앙은 방해를 받지 않을 겁니다.

 

디모데 전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니라!

 

여러분, 이 말씀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왜 하필 돈을 이야기하는가? 왜 돈을 공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돈이란 어떤 것을 가능케 하는 최고의 수단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바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수단은 아닙니다.

그런 차원에서 네가 만들어내는 수단이 돈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돈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적인 겁니다.

부자라 해서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 의미에서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그 사람은 참 신앙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라는 고백이 우리의 신앙의 근거로 서야지

돈을 사랑해서 돈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이 서 있다면 그는 아직 신앙인의 경지에서 상당히 유치한 수준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능력은 세상이 우리를 아무리 할퀴어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을 근거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예,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신앙의 근거 신앙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신앙의 근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근거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 더 생각할 말씀은 11절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디모데 전서 6장 6절에 이와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여러분, 여기 이 자족하는 마음? 어떤 마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없어도 비굴하지 않고 있다고 교만하지 않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내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믿음으로 살고 사랑하며 살 줄 아는 그런 자족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이것은 늘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12절에 같은 말이지만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합니다. 같이 12절 봅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 말씀은 모든 일에 만족할 수 있는 비법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에게는 역시 만족의 비결이 필요합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은 사모님이 아침 잠이 많아 걱정이었습니다.

깨워도 자고 일으켜 세워도 잡니다. 아침에 먼저 일어나 밥을 지어야 하는데도 예사로 목사님보다 늦게 일어납니다.

 

근데 아는 다른 목사님 사모님이 불면증에 걸려서 너무 고통가운데 있는 것을 본 겁니다.

그것을 보고는 이 목사님이 불면증보다는 잠 많은 편이 차라리 낫겠다 하고 생각을 고쳐먹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어느 쪽으로든 자기 나름대로 오늘의 문제를 스스로 족하게 여길 줄 아는 비결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만족의 비결을 얻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는 원망하고 불평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넘치는 하나님의 인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 안에서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과정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 앞에 이런저런 일이 있다고 불평하면 안 됩니다.

다 나에게 필요해서 있는 일들입니다.

내가 꼭 배워야 할 것이 있어 주어진 거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이 정해 주신 그 코스를 잘 밟아 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늘 바울이 한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될 겁니다.

13절 말씀이지요. 한 번 더 읽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일체의 비결을 배우고 나니까 또 자족하기를 배우고 나니까?

이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약하지만 그리스도는 강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강하여질 수 있습니다.

 

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을 살면 그분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되고 그분의 성품을 닮은 만족하는 삶을 사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오늘 이 말씀의 복을 누리는 자로 여러분의 남은 삶 살기를 축복합니다.

 

 

찬양 –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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