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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목장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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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새새
댓글 0건 조회 303회 작성일 24-03-16 12:40

본문

늘 섬겨 주심에 감사합니다.
이번주 목장 모임에도 성령의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주안에서 승리하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영적 거지에서 영적 부자로!
본문 – 갈 4장 1 - 11절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는 신분의 변화가 왔다는 것입니다.
영적 거지 신분에서 영적 부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가 원래 종이었다고 합니다. 1절입니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를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여기 하 반절에 종이란 말요? 성경 여러 곳에서 나오는 단어인데요.
여기서는 좀 다르게 쓰였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종이 되었는가?
이 세상 초등학문에 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초등학문이라 하면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기초를 생각합니다.

원어를 봐도 초등학문이라고 하면 학문의 ABC입니다. 기초지식입니다.

 
우리가 언제 기초지식의 종이 되었습니까?
또 기초지식의 종이 되면 나쁜 것입니까?
오늘 사도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3절 중 반절 보세요.

초등학문에 종 노릇했다고 하지 않고 이 세상 초등학문에 우리가 한때 종 노릇했다고 애기합니다.
근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 초등학문에 대해 몇 가지를 더 말합니다. 9절 보십시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하려 하느냐?

여기 하 반절요. 초등학문은 약하고 천박하다고 애기하지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8절도 보십시오.

그러나 너희가 그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여러분, 이게 무슨 말입니까?
3절에서는 우리가 이 세상 초등학문에 종이 되었다고 하고 8절에서는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의 종이었다고 말합니다.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는 이 세상의 악한 영이요, 사단입니다.
그럼 이 세상 초등학문은 무엇과 관계가 있습니까? 사단이지요.

사단이 그것을 이용해 우리를 한때 종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초등학문은 약하고 천한 것입니다.

이렇게 종합해 보면 이 세상 초등학문을 사도 바울이 무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까?
도덕적인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도덕 법을 어디에 기록해 놓았습니까? 예, 우리 양심이지요.
그래서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 해도 죄를 지을 때는 그 양심이 찔리는 법입니다.

물론 사람들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그러나 다 도덕적인 양심의 법 아래 있습니다.

 

실제로 전도해 보십시오.
우리가 예수 믿으라고 하면 가장 방해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의 대답이 나는 그래도 선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양심에 비추어 그렇다는 겁니다.

나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야! 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러므로 예수 없이도 의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때문에 하나님께로 나아오지 못합니다. 이것은 양심이 무딘 사람입니다.

반대로 양심이 예민한 사람은 절망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 뭐 하나? 내일부터 잘살아 봐야지!
아내와 한 달에 몇 번이나 싸우는데 이제는 안 싸워야지?
자식한테 좋은 말 해야지? 그랬다가 나쁜 말하고는 돌아서서 후회합니다.

이것이 어떤 현상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양심의 법아래 종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양심,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초등학문은 약한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양심에 따라 우리의 의로운 행위와 노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로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양심, 도덕적인 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의를 획득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초등학문은 천한 것입니다. 약한 겁니다.

근데 이 세상의 초등학문과 악한 영이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의 초등학문인 양심을 왜 주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 양심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도움을 구하도록 위함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양심과 도덕적인 법에 자신을 비추어 보아 나는 환자입니다.

나는 병 들었습니다. 그걸 내 힘으로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의원 되신 예수님께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우리를 그리로 몰고 가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초등학문을 허락하신 거라는 것입니다.
 
근데 사단이 이 원래 목적을 바꾸어 버렸다는 겁니다.

어떻게 바꾸었습니까?
애들아! 너희의 양심으로 착한 행실로 너희는 의로워질 수 있어!

사람들은 그때부터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보다 자기 양심에 따라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이 노리는 바요. 하나님이 양심을 주신 본래 목적과 완전히 대치 하게 된 겁니다.

여기 중고등학교 다니는 학생들 함께 예배하고 있는데요. 꼭 기억하세요.
우리는 양심으로 결코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도리어 우리는 그 양심으로 인해 나의 노력과 행위로는 결코 의롭게 될 수 없음을 깨닫고 갈보리 십자가 앞에 나아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목적을 위해 양심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의 학문, 초등학문에 종 노릇하고 있습니다.

작년 초파일 때 이런 모습을 보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절에 가서 부처 앞에 절하는 모습요?

저는 그 모습을 뉴스로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이미 죽은 그리고 거룩해지기를 노력했지만 자신도 도달하지 못했던 사람의 형상 앞에 가서 절을 하는 겁니다.

석가가 평생 거룩해지기를 위해 노력했지만 자기가 거룩해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그도 이루지 못했는데 그 형상을 만들어 놓고 절을 합니다. 이 세상 초등학문에 종노릇하는 거지요.
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합니까?

근데 우리도 원래 그런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거지였습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우리를 영적 부자로 만들어 주셨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모든 일을 감사로 해야 합니다.
억지로 하면 안 됩니다. 감사함으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이지요. 존 웨슬리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가 회심을 하고 뜨거운 은혜를 체험한 다음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회심을 하고 중생을 체험하기 전에도 나는 선교사였으며 예수 믿는 사람이었다!
나는 예수를 열심히 믿었고 온갖 종교적 일에 몰두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아들의 믿음이 아니요, 종의 믿음을 가진 자였습니다!

여러분, 믿음에도 아들의 믿음이 있고 종의 믿음이 있습니다.
이 두 믿음은 완전히 다릅니다.
종의 믿음은 억지로입니다.
억지로 믿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에 무리가 따릅니다.

반면 아들의 믿음은 특권입니다.

여러분, 예배가 의무라고 생각하십니까? 특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배하라 했으니 예배해야지 안했다가 화를 당하면 어떡하나?
억지로 예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종의 믿음입니다.

나는 공로가 하나 없는 죄인인데 예수의 이름으로 예배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은혜롭고 고마운가?
이것은 특권입니다.

기도도 특권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당하게 구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독교인은 모든 것을 특권으로 압니다.

봉사도 특권으로 합니다.
내가 건강하여 봉사할 수 있으니 감사한 것이지요.

주는 것도 특권으로 합니다.
내가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모든 것이 특권이요, 영광이요, 은혜요, 감사일 뿐입니다.

안 하면 벌 받을 것이다 저주받을 것이다 하는 생각에 억지로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종의 믿음입니다.
마땅히 우리는 종의 믿음과 아들의 믿음을 구별하고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아들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 할 겁니다.

 
주일을 성수 하는 일? 우리의 경건 생활? 봉사 생활?
전부 다 의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무거운 짐이 되거나 종의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로 감사한 마음으로 기쁨으로 지켜야 합니다.

한순간이라도 나 중심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일에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순종에도 감사, 봉사에도 감사, 심지어는 순교에도 감사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매를 맞고 예수의 이름으로 순교하게 된 순간에도 아마 하나님, 감사합니다 했을 것입니다.

나는 예수를 핍박하던 자인데 벼락을 맞아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 마땅한데
이렇게 예수 믿게 되어 사도가 되고 또 순교자가 되었으니 세상에 이런 고마운 일이 어디에 있는가?

고초를 당하면서도 그는 감사하며 찬송을 부릅니다.
그 찬송이 옥문을 엽니다.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와 찬송이 특권에 대한 감격이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해서 율법주의로부터 벗어날 때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누리게 될 겁니다.
그런 은혜가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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