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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목장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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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새새
댓글 0건 조회 566회 작성일 23-04-04 18:54

본문

목장나눔입니다.
목자님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목장 나눔 뒤 설교요악이 있습니다.


제목 :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본문 : 마태복음 27장 50 - 53절 / 요한복음 19장 30절 (찬송 / 151장)

 1) 아이스브레이크

- 자신이 누구인가를 소개 할 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가 무엇인가요?

예) 내성적

 

2) 본문 요약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신 성금요일 상황을 말씀합니다. 성금요일에 주님은 큰 고통 속에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3) 함께 나누기(1)

- 다음 구절을 읽고 드는 생각을 나누어 보십시오.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순간 휘장이 찢어져 둘이 되었다 하는데 이것의 의미가 뭘까요?


마태복음 27장 50 - 51절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4) 함께 나누기(2)

-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19장 30절)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 합니까?

 
5) 함께 나누기(3)

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온전한 용서, 온전한 구원의 복을 얼마나 누리며 사는 것 같습니까? 이것에 대해 확신하며 사는 것이 주는 유익은 무엇인 것 같습니까?

 

6) 함께 기도- 서로 기도할 제목을 나누시고 기도해 주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본문 - 마태 27장 50 – 53절, 요한 19장 30절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신 성금요일의 상황을 말씀합니다. 성금요일에 주님은 모진 고통 중에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허탄하고 공허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런 게 예수님을 통해 이스라엘의 속량과 회복을 기대했는데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시고 너무도 허무하게 가셨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연약한 제자들은 왜 주님은 그렇게 가셔야만 했을까? 하며 주님을 원망했을지도 모릅니다. 또 잔인한 로마 군인들, 인정사정없었던 유대인들의 악함을 한탄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그러므로 제자들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자기들에게 주려 하는 귀한 메시지를 전혀 받을 수 없었다는 겁니다. 결국 제자들은 스스로의 영적 상태에 관해 전혀 묻지도 않았고 확인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성금요일 밤에 한없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제자들과 다르기 위해 고난 주간에 꼭 물어야 하는 두 가지 질문을 살피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질문은 내가 휘장 안으로 들어갔는지 묻고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50, 51절 같이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이렇게 주님께서 운명하실 때 대제사장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던 지성소 휘장이 갈라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9장 7절을 보면 이 둘째 장막, 지성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시지요?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고요. 그것도 일 년에 한 번만 어린 양의 피가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거룩하고도 거룩한 곳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도록 휘장이 처져 있었던 거지요.

근데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가시면서 그 휘장이 찢어져 둘이 되었다! 말씀합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제는 대제사장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휘장 안으로 즉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영혼은 누구라도 하나님과 직접 만날 수 있게 된 거지요.

근데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그게 아닙니다. 내가 정말 휘장 안으로 들어와 있는가?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 하심의 복을 누리고 있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휘장 안에는 휘장 밖에서 체험할 수 없는 엄청난 하늘의 은혜가 있습니다. 휘장 안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요, 각양 하늘의 것들을 체험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휘장 안으로 더 깊게 더 온전하게 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오늘 그런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끝으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내가 십자가 구속의 복음을 온전히 믿는지 물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두 개의 본문을 선택했는데요, 두 본문은 시간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죽음의 정황을 마태와 요한이 똑같이 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오전 9시경이고 운명은 오후 3시경이었습니다.
마태는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한 뒤 운명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은 다 이루었도다 말씀하시고 운명하셨다고 우리에게 증언 합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 가시니라!

대개 성경학자들은 여기 요한이 기록한 다 이루었다를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으로 봅니다. 결국 시간적 차이가 있지만 두 복음서를 같이 보면 당시 정황을 더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표현에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다 이루었다!
이를 헬라어로 테텔레 스타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의미는 빚진 것을 다 갚았다! 영어로 말하면 Pay Off 했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집을 구입하게 될 때 은행에서 돈을 빌리잖아요. 그러면 원금과 이자를 내지요. 그러나 일정 기간이 지나서 모두 Pay Off, 다 갚은 후에는 더 이상 돈을 지불하지 않지요.

이유가 있다면 내가 갚아야 할 빚을 모두 다 갚았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테텔레 스타이는 우리 모든 죄악과 허물의 대가를 다 갚으셨다! 누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다 갚으셨다!

우리 인간이 저지른 모든 죄와 미래의 모든 죄까지 다 갚으셨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를 죄인이 아닌 의인으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제자들과 여인들은 바로 이 복음을 믿지 않음으로 성금요일에 방황하고 원망하고 두려워서 감히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과거 제자들만이 아니라 현대 신앙인도 테텔레 스타이의 은혜를 모르고 살아간다는 겁니다.
이미 다 용서받았고 이미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음 받았는데?
여전히 자신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구원의 백성이 되었는데?
여전히 구원 밖의 사람들처럼 위축되어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꼭 물어야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십자가 보혈로 이루어진 테텔레스타이의 은혜를 믿고 있는가? 만일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구원의 확신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구원의 확신이 가물가물해졌다면 오늘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간절함과 사모함으로 휘장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많은 것을 누려도 테텔레 스타이의 체험이 없으면 신앙인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이 부분에 대해 아주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인데요. 아주 강한 표현을 씁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이 바울의 권고대로 우리 스스로에게 묻고 확인해서 내가 주 안에 있는지 확증 해야 합니다.

절대로 나중으로 미룰 수 없고 남에게 부탁할 수 없는 중요하고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인이 구원에 관한 확신 정도에 따라서 살아가는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구원의 확신이 희미하면 할수록 영적인 침체와 빈곤을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역으로 구원의 확신이 분명하면 할수록 빠른 영적 성장과 발전을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 신앙인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권력과 명예, 물질도 아닙니다. 사실은 얼마나 신실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내가 정말 구원받았는지에 대한 확고한 확신이 있는가? 이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이 아닌 바로 나에게 구원의 확신에 대해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구원의 확신을 놓치면 작은 일들 앞에서 넘어지고 결국에 가서는 이름뿐인 신자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테텔레 스타이! 다 이루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도다! 말씀하시므로 우리에게 온전한 용서, 온전한 구원의 축복이 이루어졌음을 선포하십니다.

이것을 너무 기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되고요.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이 험한 세상을 능히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우리 성도는 십자가 앞에서 꼭 던져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두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함을 말씀드렸습니다.

먼저는 내가 휘장 안에 들어와 있는지?
그 속에만 있는 하늘의 은혜를 누리며 살고 있는지?

그다음은 주님이 십자가에 다 이루어 주신 것들을 내가 정말 믿고 구원의 확신 속에 주님을 정말 신뢰하며 살고 있는지 꼭 묻고 확인해야 합니다. 이게 확실할 때 올곧게 믿음의 길 걷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그런 은혜가 꼭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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