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 목장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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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주안에서 좋은 날입니다.
목자들 주안에서 화이팅하십시오.
▣ 제 목 :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본 문 : 요한복음 2장 13 - 22절 (찬송가 23장 )
아이스 브레이크 - 코로나시대에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본문요약 -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입니다.
1) 함께 생각할 문제 - 여러분이 생각 할 때 왜 거록해야 할 성전이 예수님이 분노하실 정도로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을 내어 쫓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2) 함께 생각할 문제 - 설교 때 스가랴 14장 21절 그리고 말라기 3장 1절에서 3절 말씀을 통해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던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왜 그들이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슥14:21)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말 3:1-3)
3) 함께 생각할 문제 - 고린도전서 3장 16절은 우리를 가리켜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이라 합니다. 어떻개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됨, 어떻게하면 크리천다운 삶을 살수 있을까요?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4) 함께 기도 - 각자에게 있는 기도제목을 나누시고 기도해주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본문 – 요한 2장 13 - 22절
자, 이제 오늘 본문 보십시오. 예수님이 성전을 깨끗하게 정화하신 사건이지요. 이 사건은 하나님의 성전이라 할지라도 더럽혀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때 성전은 반드시 정화되어야 하고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 안에 거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21장에 의하면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주일에 성전 정화사건이 또 다시 재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성전 정화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한 번 있었는가 두 번 있었는가를 가지고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두 번인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3년 전에 몰아내셨던 장사꾼들이 다시 성전을 차지해 천연덕스럽게 자기 욕망의 배를 채우며 성전을 더럽히고 있었던 겁니다. 그때에도 주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내어쫓으심으로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성전 정화는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지속되어야 함을 말하는 겁니다. 교회와 성도는 한때 한순간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순간이라도 하나님에게서 시선을 옮기는 즉시 인간은 추악한 자기 탐욕의 노예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자,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거기 보면 예수님이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방적으로 장사꾼들을 내어 쫓고 판을 뒤엎는 사건을 목격한 유대인들의 반응이 잘 나타나지요.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여러분, 유대인들이 예수께 하는 말? 잘 보셔야 합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여기서 이런 일은 뭡니까?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를 내어 쫓은 일이지요.
그 다음 말씀 요?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여러분, 이 두 말을 연결해 생각해 보십시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감이 잡히세요?
지금 이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이 사람이 보통 분이 아닌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쫓는 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도 감히 이렇게까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었지만 직접 이렇게 성전을 찾아와 그 안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쫓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성전을 청결케 하신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보여주신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 시키는 행위였습니다.
스가랴서 맨 끝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스가랴 14장 21절 하 반절입니다.
그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스가랴서는 성전 회복에 대한 예언서입니다.
여기 가나안 사람이라는 히브리어는 장사하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다시는 성전에 장사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겁니다.
가나안 원주민이 없을 거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바로 이 사건? 예수님이 행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은 우리처럼 결코 구약 성경에 무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동박 박사가 나타난 것을 보고 예수님이 태어나실 장소가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베들레헴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분이 누군지를 모른다? 그럴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는 나다나엘이 했던 것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하는 고백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을 보면 아무리 성경을 모르는 자라 하더라도 분명히 그 입에서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하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메시아를 보았다고 고백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저 18절에서 예수께 뭐라 합니까?
뭔가 대단한 사람인 것 같은데 그 표적을 보이라!
그러면 믿겠다는 겁니다.
다 알면서 자기 양심을 죽이고 있습니다.
다 알면서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를 선지자로 격하시키면서 표적을 보이라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
얼마나 가증한 모습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서 유다 사람들이 이렇게 된 것입니까? 어떻게 되었길래 이들은 진리 되신 주님을 바로 눈앞에서 보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지 못해서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까?
그들 안에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돈밖에 없습니다.
돈 욕심으로 가득하면 진리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진리를 인정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는 까닭이 진리를 몰라서입니까? 아닙니다. 무엇이 옳은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에 양심이 팔려서 옳은 것을 보고서도 옳다고 인정하지 못하는 겁니다.
지금 이들 요? 스스로 미련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참된 지각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다 알면서도 그것을 사용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에게 유리할 때는 성경을 펼쳐 들지만 불리할 때는 얼마든지 성경을 무시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중요한 것은 오늘도 주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잠자는 우리의 영혼을 말씀으로 깨워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눈을 감고 진리로부터 고개를 돌릴 때 그 사람에게는 진리가 닫히게 됩니다. 은혜의 문도 닫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부탁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양심을 두들길 때 주님이 나를 채찍질하러 오신 줄로 알고 빨리 그분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내 무디어진 양심을 깨끗하게 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막혀 있던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겁니다.
그런 은혜가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꼭 있기를 축원합니다.
자, 이제 예수님의 대답을 보십시오. 19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주님의 이 대답에 유대인들은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사흘이라면 웅장한 성전을 헐어내기도 불가능한 시간인데 하물며 단 사흘 동안에 다시 세우겠다? 그것은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마치 조롱하듯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20절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본질에 대해 말씀하신 것인데 반해 유대인들은 성전의 외관만을 따지고 있었으니 양측의 대화는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본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21절이지요.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 예수님의 말씀? 이해가 되지요.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배당이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겁니다.
그 예배당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가?
아무리 지상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건물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진정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위대한 작품일 수는 있겠으나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오늘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거대한 성전을 헐어라!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리라!
그리고 주님께서 사흘 만에 일으키실 성전이 무엇인지 보여주시잖아요. 십자가 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당신 자신이 성전 됨을 명확하게 보여주셨지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를 지고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살아 계실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만이 성전의 토대가 되고요. 성전의 본질이 되시고요. 성전의 머리인 동시에 성전의 문이 되십니다. 그분이 계심으로 성전은 비로소 성전다울 수 있고 사람을 살리는 복음의 전당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볼 때 성전 정화란 다른 게 아니고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안에 바로 서는 것을 의미하고요.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3장 16절은 우리 자신을 가리켜 뭐라 합니까?
너희가 곧 하나님의 성전이라!
무슨 말입니까?
참 성전이 되시는 주님께서 계신 곳이 곧 성전이 된다는 거잖아요.
그 성전 되신 주님이 우리 속에 계시면 바로 내가 성전이 되는 거지요.
그럼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이 될 수 있는 걸까요?
날마다 주님을 바라봄으로 항상 주님 안에 거함으로
그리고 언제나 예수 그리스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실 때
가능한 것이지요.
그렇게 될 때 여러분들을 통해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일터가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목자들 주안에서 화이팅하십시오.
▣ 제 목 :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본 문 : 요한복음 2장 13 - 22절 (찬송가 23장 )
아이스 브레이크 - 코로나시대에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본문요약 -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입니다.
1) 함께 생각할 문제 - 여러분이 생각 할 때 왜 거록해야 할 성전이 예수님이 분노하실 정도로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을 내어 쫓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2) 함께 생각할 문제 - 설교 때 스가랴 14장 21절 그리고 말라기 3장 1절에서 3절 말씀을 통해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던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왜 그들이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슥14:21)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말 3:1-3)
3) 함께 생각할 문제 - 고린도전서 3장 16절은 우리를 가리켜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이라 합니다. 어떻개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됨, 어떻게하면 크리천다운 삶을 살수 있을까요?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4) 함께 기도 - 각자에게 있는 기도제목을 나누시고 기도해주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본문 – 요한 2장 13 - 22절
자, 이제 오늘 본문 보십시오. 예수님이 성전을 깨끗하게 정화하신 사건이지요. 이 사건은 하나님의 성전이라 할지라도 더럽혀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때 성전은 반드시 정화되어야 하고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 안에 거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21장에 의하면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주일에 성전 정화사건이 또 다시 재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성전 정화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한 번 있었는가 두 번 있었는가를 가지고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두 번인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3년 전에 몰아내셨던 장사꾼들이 다시 성전을 차지해 천연덕스럽게 자기 욕망의 배를 채우며 성전을 더럽히고 있었던 겁니다. 그때에도 주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내어쫓으심으로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성전 정화는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지속되어야 함을 말하는 겁니다. 교회와 성도는 한때 한순간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순간이라도 하나님에게서 시선을 옮기는 즉시 인간은 추악한 자기 탐욕의 노예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자,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거기 보면 예수님이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방적으로 장사꾼들을 내어 쫓고 판을 뒤엎는 사건을 목격한 유대인들의 반응이 잘 나타나지요.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여러분, 유대인들이 예수께 하는 말? 잘 보셔야 합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여기서 이런 일은 뭡니까?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를 내어 쫓은 일이지요.
그 다음 말씀 요?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여러분, 이 두 말을 연결해 생각해 보십시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감이 잡히세요?
지금 이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이 사람이 보통 분이 아닌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쫓는 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도 감히 이렇게까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었지만 직접 이렇게 성전을 찾아와 그 안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쫓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성전을 청결케 하신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보여주신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 시키는 행위였습니다.
스가랴서 맨 끝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스가랴 14장 21절 하 반절입니다.
그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스가랴서는 성전 회복에 대한 예언서입니다.
여기 가나안 사람이라는 히브리어는 장사하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다시는 성전에 장사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겁니다.
가나안 원주민이 없을 거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바로 이 사건? 예수님이 행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은 우리처럼 결코 구약 성경에 무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동박 박사가 나타난 것을 보고 예수님이 태어나실 장소가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베들레헴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분이 누군지를 모른다? 그럴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는 나다나엘이 했던 것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하는 고백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을 보면 아무리 성경을 모르는 자라 하더라도 분명히 그 입에서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하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메시아를 보았다고 고백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저 18절에서 예수께 뭐라 합니까?
뭔가 대단한 사람인 것 같은데 그 표적을 보이라!
그러면 믿겠다는 겁니다.
다 알면서 자기 양심을 죽이고 있습니다.
다 알면서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를 선지자로 격하시키면서 표적을 보이라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
얼마나 가증한 모습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서 유다 사람들이 이렇게 된 것입니까? 어떻게 되었길래 이들은 진리 되신 주님을 바로 눈앞에서 보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지 못해서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까?
그들 안에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돈밖에 없습니다.
돈 욕심으로 가득하면 진리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진리를 인정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는 까닭이 진리를 몰라서입니까? 아닙니다. 무엇이 옳은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에 양심이 팔려서 옳은 것을 보고서도 옳다고 인정하지 못하는 겁니다.
지금 이들 요? 스스로 미련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참된 지각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다 알면서도 그것을 사용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에게 유리할 때는 성경을 펼쳐 들지만 불리할 때는 얼마든지 성경을 무시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중요한 것은 오늘도 주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잠자는 우리의 영혼을 말씀으로 깨워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눈을 감고 진리로부터 고개를 돌릴 때 그 사람에게는 진리가 닫히게 됩니다. 은혜의 문도 닫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부탁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양심을 두들길 때 주님이 나를 채찍질하러 오신 줄로 알고 빨리 그분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내 무디어진 양심을 깨끗하게 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막혀 있던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겁니다.
그런 은혜가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꼭 있기를 축원합니다.
자, 이제 예수님의 대답을 보십시오. 19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주님의 이 대답에 유대인들은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사흘이라면 웅장한 성전을 헐어내기도 불가능한 시간인데 하물며 단 사흘 동안에 다시 세우겠다? 그것은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마치 조롱하듯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20절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본질에 대해 말씀하신 것인데 반해 유대인들은 성전의 외관만을 따지고 있었으니 양측의 대화는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본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21절이지요.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 예수님의 말씀? 이해가 되지요.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배당이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겁니다.
그 예배당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가?
아무리 지상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건물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진정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위대한 작품일 수는 있겠으나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오늘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거대한 성전을 헐어라!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리라!
그리고 주님께서 사흘 만에 일으키실 성전이 무엇인지 보여주시잖아요. 십자가 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당신 자신이 성전 됨을 명확하게 보여주셨지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를 지고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살아 계실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만이 성전의 토대가 되고요. 성전의 본질이 되시고요. 성전의 머리인 동시에 성전의 문이 되십니다. 그분이 계심으로 성전은 비로소 성전다울 수 있고 사람을 살리는 복음의 전당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볼 때 성전 정화란 다른 게 아니고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안에 바로 서는 것을 의미하고요.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3장 16절은 우리 자신을 가리켜 뭐라 합니까?
너희가 곧 하나님의 성전이라!
무슨 말입니까?
참 성전이 되시는 주님께서 계신 곳이 곧 성전이 된다는 거잖아요.
그 성전 되신 주님이 우리 속에 계시면 바로 내가 성전이 되는 거지요.
그럼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이 될 수 있는 걸까요?
날마다 주님을 바라봄으로 항상 주님 안에 거함으로
그리고 언제나 예수 그리스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실 때
가능한 것이지요.
그렇게 될 때 여러분들을 통해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일터가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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