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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 목장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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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새새
댓글 0건 조회 15회 작성일 25-09-0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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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 나눔 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성품 배우기(1) 오래 참음

본문 - 베드로후서 3장 8 - 13절

 



여러분은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정말 세상은 다 그렇고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아직도 세상에 소망이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총체적으로 부패해서 볼 것도 없어 절망하고 있습니까?

 

기다려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겁니까? 그런 가치가 있다면 얼마나 더 기다리면 좋겠습니까?

그리고 그 속에서 예수 믿는 내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아직도 세상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다면 기다리는 동안에 내가 할 일은 무엇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느 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현재 우리는 음식 쓰레기를 연간 8조원 어치나 버린다고 합니다.

생활 쓰레기의 31%가 음식 쓰레기라고 합니다. 실제는 다 먹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저 아프리카에는 먹을 것만이 아니라 물이 없어 죽어가는 아이들이 수천 명인데 우리는 지금 멀쩡한 음식을 쓰레기로 엄청나게 버리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밥 먹을 때 한 톨이라도 남기면 아버지로부터 엄청 혼이 났습니다.

아니 음식 버리면 천벌을 받는 것으로 알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러던 우리가 언제부터 건방져 이 모양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 하나님 편에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걱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음식을 내다 버리는 사람들에게서 이다음에 양식을 거두어가시면 어떻게 하나 걱정입니다.

 

이렇게 미련한 짓을 하는 인간들을 그래도 불쌍히 여겨주시고 매년 풍년을 주시니 그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짓을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무엇을 보아도 하나 신통한 것이 없습니다.

 

당장 저주해 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으시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참아주십니다.

 

개인적으로나 여러분의 사생활에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많이많이 참아주셔서 그 은혜 가운데 그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 오늘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보다 우리 죄를 더 잘 아십니다.

 

우리가 실망하고 있고 이것저것이 잘못됐다고들 하지마는 그보다 더 깊고 깊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그 많은 죄악들?

하나님 앞에야 오죽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실 때 그 많은 죄악을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다 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오늘도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향해 여전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근데 그 기다림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기대가 있는 기다림입니다.



어떤 기대입니까?

우리가 더 신령한 사람, 더 경건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기다림입니다.

이 하나님의 기다림에 바르게 응답하는 여러분들 되기를 축복합니다.

 

자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이런 기대를 갖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하루를 천년 같이 기다리신다! 하십니다. 8절이지요.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여러분,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 같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는 길다, 짧다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단 하루의 시간이 천년 같은 의미의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또한 천년 같은 긴 시간이라도 하루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 이것을 물질로 환산해 보십시오.

 

일억이 일원 같고 일원이 1억 같고? 그 많은 지식이 무식한 것 같고 무식이 지식 같고?

우리 인간이 이렇다 저렇다? 좋은 일이다 나쁜 일이다?

죽겠다 살겠다? 해 보아야 하나님 앞에는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시간에도 물리적 시간이 있고 심리적 시간이 있습니다.

한 해가 가고 또 다른 한해가 오고 이것은 우리가 손꼽아 기다리는 물리적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와는 다른 시간이 있습니다. 심리적 시간이 그것입니다.

 

같은 시간이지마는 청년의 시간이 다르고 노인의 시간이 다릅니다.

건강할 때의 시간이 다르고 병들어 아플 때의 시간이 다릅니다.

기쁘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고 힘들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심리적 시간? 사실은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밖에도 중요한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시간입니다.

 

땅에서 계산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땅을 내려다보시는 차원에서의 시간입니다.

바로 그분에게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의 사랑? 그의 인내하심? 그의 간절한 구원의 시간 개념으로 볼 때?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시는 대로 여기 우리 성도들이 있습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이 구원 받은 자를 빨리 불러 가셔서 그 좋은 영원한 세계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고 싶지만 아직 세상에 두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들이 많기에?

그 일을 제대로 하려 할 때 필연적으로 고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어떤 분은 순교합니다. 순교하며 극심한 고생을 하는 모습?

그 모습을 주님이 바라보실 때 정말로 하루가 천년 같을 것입니다.

빨리빨리 불러오고 싶습니다. 그런 초초함이 주님께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가 천년 같은가 하면 회개하지 않는 사람?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 이 사람들을 빨리 구원해야 되겠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끔 해야되겠는데?

이 큰일을 앞두고 보면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이렇게 천년 인양 길게 느껴지는가 하면 천년이 하루 같이 짧게 느껴지는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생각하시는 구속사적 시간입니다.

 

지금도 사람들 중에 인간적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주의적 풍요를 기대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고요. 역사의 끝은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밝은 미래는 거짓말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가고 종말을 향해 가는 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느낌이며 지금의 현실입니다.

주님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3장 11절, 12절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은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여기 12절에 밤이 깊다는 것은 아침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주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은 반드시 끝날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약속이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해지고 있는 겁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세상에 끝이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큰 환난이 있을 것이다!

인간성과 자연의 파괴가 있고 지진도 있고 재난도 있고 전쟁도 있고 엄청난 폭력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어두운 것들이 극단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다!

그 모든 환난과 함께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리라! 그제야 끝이 오리라!



신앙인들도 심지어는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때때로 성경을 잘못 이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오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오해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된다? 할 때 그 의미를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겁니다.

즉 환난도 고난도 기근도 없이 복음의 문이 활짝 열려서 자유롭게 복음이 전파되는?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평안하게 마치 옛날에 여의도 광장에 백만 명이 모인 것처럼

온 세계가 이렇게 평화롭고 자유로운 가운데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는 것으로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근데 예수님의 예언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전쟁이 더 있을 거다!

더 환난과 억압이 있을 거다! 더 많은 기근과 지진이 발생할 거다!

그 속에서 복음이 전파되게 될 거다! 이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환난과 핍박과 질병과 고난 속에서 오히려 아침은 가까워집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복음도 더 힘있게 전파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역설입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가지는 역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13절입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근데 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기 전에 상황이 어떻습니까? 12절이지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내리는?

물론 상징적인 표현들이지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큰 재난이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 많은 재난들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겁니다.

 

주님을 향해 우리 마음의 문을 열라는 거지요.

주님께로 온전히 돌아오라는 것이지요.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백성들에게 약속한 것이 이루어질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모든 것이 마지막을 고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시점에서 우리가 맞는 하루하루의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주어질지?

올해를 우리가 다 살 수 있을지 누가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며칠 몇 년이 주어지든 우리에게 그 시간의 의미란 이런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시간이요. 우리가 더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를 바라시는 시간이요.

우리가 더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가지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훈련의 시간인 것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교만한 자는 겸손해지고!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고 사는 자는 그 욕심을 다 버리는!

그리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도록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시간인 겁니다.

 

그런 모습으로 우리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보다 더 신령한 사람으로 보다 더 경건한 사람으로? 마치 열 처녀가 기름을 준비한 것처럼 더 깨어 더 신실하게 그렇게 미래를 맞이해야 할 겁니다.

 

앞으로의 미래를 진단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종말이 한 걸음 한 걸음 더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더 바른 믿음의 자세로 더 충성되게 복음을 전하며 주님이 주신 소망의 약속들을 바라보면서 여러분의 남은 삶 살아가야 할 겁니다.

그렇게 사는 저와 여러분의 남은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찬양 – 그날이 도적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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