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 나눔(2) 룻기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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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인균 목사입니다.
이번 주도 주안에서 화이팅하십시오.
모든 목자들 축복합니다.
이 시대의 룻으로 삽시다!
본문 – 룻기 4장 1 -12절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어가다 보면 하나님에 대한 여러 호칭들을 만나게 되지요.
근데 그 하나님의 호칭들이 믿음의 사람들이 삶 속에서 경험한 사건들과 깊은 연관이 있더라는 겁니다.
가령 여호와 닛시? 어떤 뜻이지`요? 우리에게 승리 주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이 호칭이 언제 생겨났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이겼을 때이지요.
또 여호와 이레라는 호칭이 있습니다.
이 호칭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백 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고 바쳤을 때
이미 어린 양을 준비하고 계신 하나님을 경험한 뒤에 주어진 이름입니다.
그 외에도 여호와 삼마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이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입니다. 에스겔서에 나오는데요.
그 이름의 뜻이 거기 계시는 하나님!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거기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이 룻기에도 또 하나의 하나님의 명칭이 나옵니다.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이 룻기의 배경이 되는 사사기는 전쟁의 시기이잖아요.
계속되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그들은 그들의 대장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했습니다.
근데 그들이 어떻게 합니까? 처음에는 나름 잘 싸웠지만 나중에는 싸워야 할 싸움을 싸우지 않지요.
오직 한 여인, 그것도 이방 여인인 룻만이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라 부르며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의 싸움을 싸우지요.
그랬기에 하나님께서 그 여인을 주목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 우리가 룻기 4장을 살펴보면서 사사 시대? 참으로 영적으로 어두웠던 시대에 하나님의 편에 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 이 룻을 잘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녀를 통해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갈 다윗을 준비하셨고요.
그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시 세우는 작업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건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이 시대에 룻과 같은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다음 시대 다윗을 준비하길 바라십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시고 여러분들이 바로 이 시대에 룻과 같은 모습으로 서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자, 이제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 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지금 보아스가 성문에 앉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가 끊어진 나오미의 가정, 그 가정의 대를 이어줄 기업 무를 자, 고엘의 법적인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서이지요.
사실 보아스는 자기가 룻의 기업을 무르고 싶은 선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순위를 가진 친족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친족에게 룻의 기업 무를 의사가 있는지 공개적으로 확인하려 한 것입니다. 3, 4절 보십시오.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 하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으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보아스가 불러 세운 이 사람이 뭐라 합니까? 기업을 무르겠다고 하지요. 근데 그 무르겠다는 의도가 어떻습니까?
불순하지요. 어차피 나오미는 늙어서 애를 낳을 수 없으니 그 땅을 사두면 자기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에서 땅을 넓히는 것은 엄청난 이익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원칙적으로 타 지파와는 땅을 사고팔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이 없이 죽은 친척을 둔 경우?
그 땅을 차지하기가 가장 좋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횡재를 하는 거지요.
그때 보아스가 그 친척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습니다. 5절이지요.
보아스가 이로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이 친척이 계산한 것은 나오미가 늙었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그에게 설명하기를 과부가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는 겁니다.
즉 나오미 말고 젊은 며느리가 있는데 고엘을 신청한 여자는 나오미가 아니라 모압 여자 룻이 한 거라는 것입니다.
룻은 젊은 여자이기에 얼마든지 아이를 낳을 수 있지요.
만약 룻이 아이를 낳는 날에는 자기가 산 땅이 누구에게로 돌아갑니까?
룻의 아들이지요. 이걸 알고는 기업을 무르지 않겠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원래 이 우선권을 가진 이 친척은 하나님이 내신 고엘의 참된 정신이 없는 자였습니다. 고엘은 희생적인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겁니다. 그런 희생할 마음이 이 사람에게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고엘을 포기하지요. 6절입니다.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여러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만약 이 사람이 기업 무르겠다 했으면 룻에게 아이를 낳을 기회를 주지 않게 해서 자기가 그 땅을 독차지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이런 유사한 일들을 만날 때가 있지요.
이런 때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악한 자의 눈을 어둡게 해서 악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고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길 때에 아히도벨의 모략을 보십시오.
군사 만 이천 명을 주면 당장 따라가서 다윗만 죽이고 백성을 데리고 오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작전입니까?
근데 하나님은 압살롬을 미련하게 하셔서 아히도벨의 모략보다는 후새의 전면전의 계략을 듣게 하셔서 그 힘든 순간을 모면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진리 하나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참 신앙이 뭔가? 여러분, 참된 신앙이 뭐라 생각하십니까?
참 신앙은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근데 우리는 내가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 맡겼을 때 혹시 망치지 않을까 하며 두려워합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앞둔 청년이 지금 내 마음에 드는 멋진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께 맡기면 그 사람 대신에 못생기고 신앙만 좋은 사람을 배필로 주시면 어떻게 하나? 걱정합니다.
또 유학 가서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고 싶은데 하나님께 맡겼을 때 먼 타지에 선교사로 가라 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염려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런 걱정을 말끔히 해결해 줍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합당한 것, 가장 좋은 것 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의 어려움을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방식으로 해결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어떤 문제라도 자기 생각이나 자기 판단으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삶 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끝으로 18절 이하를 보십시오. 18절에서 22절입니다.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이렇게 룻기의 마무리는 베레스의 계보로 시작해서 다윗을 낳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근데 이 베레스의 계보는 앞에 12절과 깊은 연관을 가집니다. 12절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 두 구절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런 질문이 생기지요.
왜 다말이 유다에게서 낳은 베레스를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분, 다말이 누구입니까? 유다의 며느리이잖아요.
이런 관계에서 나온 아이가 베레스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추한 계보이잖아요.
근데 이 족보가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여기에 어떤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까?
우리 하나님, 이런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싶은 겁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할 엘리멜렉이 자기 소견대로 잘살겠다고 하나님을 떠나 모압 지방으로 갔잖아요.
거기서 그의 아들 말룐이 여호와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갈 수 없는 모압 여인과 결혼하고 자식 없이 죽지요.
나오미는 태가 닫혔고 결국 엘리멜랙의 기업은 완전히 끊어지고 맙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룻을 통해 그의 기업이 이어지도록 하시지요.
이게 다말과 같다는 겁니다.
즉 실은 인간의 죄악으로 다 끊어졌지만 하나님의 힘과 능력이 그의 집을 다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것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전적으로 하신 거라는 겁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기업이 끊깁니다.
그러나 그 기업을 이어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만군의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에 그분만을 꽉 붙들고 사는 것? 그것이 참된 믿음의 길을 걷는 비결이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고백은 여전히 여기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주님, 나는 능력이 없습니다. 지금도 두렵습니다!
말씀 듣고 그것이 내 믿음이 된 것 같다 가도 돌아서서 세상으로 나가면? 얼마나 두려운지 모릅니다! 그런 연약함이 저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붙잡습니다! 주님 도와주셔서 룻처럼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가게 해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내 인생의 기업이 되어주셨다고 내 기쁨이 되어주셨다고 고백하게 해 주옵소서!
이 고백이 오늘 여러분의 고백이 되길 축복합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이런 우리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신다는 것?
잊으시면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룻기를 주신 이유입니다.
여러분, 룻이 한 것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뭐 대단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시어머니 봉양하고 나오미가 하라는 대로 대를 잇는 결혼해서 아이 하나를 낳고 그 아이를 믿음의 아이로 잘 키우며 살다가 죽은 것이 룻이 한 일의 전부입니다. 이 정도는 해 볼 말한 일 아닙니까?
아브라함처럼 아들 이삭을 바치라 한 것도 아니고요.
이삭처럼 목숨 걸고 순종하라 한 것도 아니고요.
모세처럼 바로와 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라 한 것도 아니지요.
그저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섬기고 어렵고 힘들어도 믿음의 복된 가정을 꾸려서 하나님이 주신 아이들? 믿음으로 잘 키우는 일이라면? 우리도 해 볼 만한 일 아닙니까?
룻은 자신이 다윗의 조상이 될지 예수님의 조상이 될지 알지 못한 채?
그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아이들? 잘 키웠을 뿐입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그 헌신을 얼마나 기뻐하셨으면
다윗의 조상이 되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어 지금까지 그 이름이 아름답게 알려지고 천국에서도 유명하며 이 땅에서도 유명한 자로 만들어 주셨을까요?
여러분, 지금 우리가 하는 것들 절대로 하찮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며 기도하는 일들? 봉사하는 일들?
작은 일이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신의 자녀들? 믿음으로 키우는 일?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키웠다면 그것을 주님 기억하시고 유명하게 하십니다.
그의 가문과 삶을 축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축복을 계속 누려 가시는 여러분의 가정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번 주도 주안에서 화이팅하십시오.
모든 목자들 축복합니다.
이 시대의 룻으로 삽시다!
본문 – 룻기 4장 1 -12절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어가다 보면 하나님에 대한 여러 호칭들을 만나게 되지요.
근데 그 하나님의 호칭들이 믿음의 사람들이 삶 속에서 경험한 사건들과 깊은 연관이 있더라는 겁니다.
가령 여호와 닛시? 어떤 뜻이지`요? 우리에게 승리 주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이 호칭이 언제 생겨났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이겼을 때이지요.
또 여호와 이레라는 호칭이 있습니다.
이 호칭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백 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고 바쳤을 때
이미 어린 양을 준비하고 계신 하나님을 경험한 뒤에 주어진 이름입니다.
그 외에도 여호와 삼마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이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입니다. 에스겔서에 나오는데요.
그 이름의 뜻이 거기 계시는 하나님!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거기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이 룻기에도 또 하나의 하나님의 명칭이 나옵니다.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이 룻기의 배경이 되는 사사기는 전쟁의 시기이잖아요.
계속되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그들은 그들의 대장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했습니다.
근데 그들이 어떻게 합니까? 처음에는 나름 잘 싸웠지만 나중에는 싸워야 할 싸움을 싸우지 않지요.
오직 한 여인, 그것도 이방 여인인 룻만이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라 부르며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의 싸움을 싸우지요.
그랬기에 하나님께서 그 여인을 주목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 우리가 룻기 4장을 살펴보면서 사사 시대? 참으로 영적으로 어두웠던 시대에 하나님의 편에 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 이 룻을 잘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녀를 통해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갈 다윗을 준비하셨고요.
그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시 세우는 작업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건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이 시대에 룻과 같은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다음 시대 다윗을 준비하길 바라십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시고 여러분들이 바로 이 시대에 룻과 같은 모습으로 서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자, 이제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 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지금 보아스가 성문에 앉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가 끊어진 나오미의 가정, 그 가정의 대를 이어줄 기업 무를 자, 고엘의 법적인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서이지요.
사실 보아스는 자기가 룻의 기업을 무르고 싶은 선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순위를 가진 친족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친족에게 룻의 기업 무를 의사가 있는지 공개적으로 확인하려 한 것입니다. 3, 4절 보십시오.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 하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으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보아스가 불러 세운 이 사람이 뭐라 합니까? 기업을 무르겠다고 하지요. 근데 그 무르겠다는 의도가 어떻습니까?
불순하지요. 어차피 나오미는 늙어서 애를 낳을 수 없으니 그 땅을 사두면 자기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에서 땅을 넓히는 것은 엄청난 이익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원칙적으로 타 지파와는 땅을 사고팔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이 없이 죽은 친척을 둔 경우?
그 땅을 차지하기가 가장 좋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횡재를 하는 거지요.
그때 보아스가 그 친척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습니다. 5절이지요.
보아스가 이로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이 친척이 계산한 것은 나오미가 늙었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그에게 설명하기를 과부가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는 겁니다.
즉 나오미 말고 젊은 며느리가 있는데 고엘을 신청한 여자는 나오미가 아니라 모압 여자 룻이 한 거라는 것입니다.
룻은 젊은 여자이기에 얼마든지 아이를 낳을 수 있지요.
만약 룻이 아이를 낳는 날에는 자기가 산 땅이 누구에게로 돌아갑니까?
룻의 아들이지요. 이걸 알고는 기업을 무르지 않겠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원래 이 우선권을 가진 이 친척은 하나님이 내신 고엘의 참된 정신이 없는 자였습니다. 고엘은 희생적인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겁니다. 그런 희생할 마음이 이 사람에게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고엘을 포기하지요. 6절입니다.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여러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만약 이 사람이 기업 무르겠다 했으면 룻에게 아이를 낳을 기회를 주지 않게 해서 자기가 그 땅을 독차지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이런 유사한 일들을 만날 때가 있지요.
이런 때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악한 자의 눈을 어둡게 해서 악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고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길 때에 아히도벨의 모략을 보십시오.
군사 만 이천 명을 주면 당장 따라가서 다윗만 죽이고 백성을 데리고 오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작전입니까?
근데 하나님은 압살롬을 미련하게 하셔서 아히도벨의 모략보다는 후새의 전면전의 계략을 듣게 하셔서 그 힘든 순간을 모면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진리 하나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참 신앙이 뭔가? 여러분, 참된 신앙이 뭐라 생각하십니까?
참 신앙은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근데 우리는 내가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 맡겼을 때 혹시 망치지 않을까 하며 두려워합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앞둔 청년이 지금 내 마음에 드는 멋진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께 맡기면 그 사람 대신에 못생기고 신앙만 좋은 사람을 배필로 주시면 어떻게 하나? 걱정합니다.
또 유학 가서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고 싶은데 하나님께 맡겼을 때 먼 타지에 선교사로 가라 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염려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런 걱정을 말끔히 해결해 줍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합당한 것, 가장 좋은 것 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의 어려움을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방식으로 해결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어떤 문제라도 자기 생각이나 자기 판단으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삶 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끝으로 18절 이하를 보십시오. 18절에서 22절입니다.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이렇게 룻기의 마무리는 베레스의 계보로 시작해서 다윗을 낳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근데 이 베레스의 계보는 앞에 12절과 깊은 연관을 가집니다. 12절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 두 구절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런 질문이 생기지요.
왜 다말이 유다에게서 낳은 베레스를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분, 다말이 누구입니까? 유다의 며느리이잖아요.
이런 관계에서 나온 아이가 베레스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추한 계보이잖아요.
근데 이 족보가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여기에 어떤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까?
우리 하나님, 이런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싶은 겁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할 엘리멜렉이 자기 소견대로 잘살겠다고 하나님을 떠나 모압 지방으로 갔잖아요.
거기서 그의 아들 말룐이 여호와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갈 수 없는 모압 여인과 결혼하고 자식 없이 죽지요.
나오미는 태가 닫혔고 결국 엘리멜랙의 기업은 완전히 끊어지고 맙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룻을 통해 그의 기업이 이어지도록 하시지요.
이게 다말과 같다는 겁니다.
즉 실은 인간의 죄악으로 다 끊어졌지만 하나님의 힘과 능력이 그의 집을 다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것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전적으로 하신 거라는 겁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기업이 끊깁니다.
그러나 그 기업을 이어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만군의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에 그분만을 꽉 붙들고 사는 것? 그것이 참된 믿음의 길을 걷는 비결이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고백은 여전히 여기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주님, 나는 능력이 없습니다. 지금도 두렵습니다!
말씀 듣고 그것이 내 믿음이 된 것 같다 가도 돌아서서 세상으로 나가면? 얼마나 두려운지 모릅니다! 그런 연약함이 저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붙잡습니다! 주님 도와주셔서 룻처럼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가게 해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내 인생의 기업이 되어주셨다고 내 기쁨이 되어주셨다고 고백하게 해 주옵소서!
이 고백이 오늘 여러분의 고백이 되길 축복합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이런 우리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신다는 것?
잊으시면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룻기를 주신 이유입니다.
여러분, 룻이 한 것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뭐 대단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시어머니 봉양하고 나오미가 하라는 대로 대를 잇는 결혼해서 아이 하나를 낳고 그 아이를 믿음의 아이로 잘 키우며 살다가 죽은 것이 룻이 한 일의 전부입니다. 이 정도는 해 볼 말한 일 아닙니까?
아브라함처럼 아들 이삭을 바치라 한 것도 아니고요.
이삭처럼 목숨 걸고 순종하라 한 것도 아니고요.
모세처럼 바로와 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라 한 것도 아니지요.
그저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섬기고 어렵고 힘들어도 믿음의 복된 가정을 꾸려서 하나님이 주신 아이들? 믿음으로 잘 키우는 일이라면? 우리도 해 볼 만한 일 아닙니까?
룻은 자신이 다윗의 조상이 될지 예수님의 조상이 될지 알지 못한 채?
그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아이들? 잘 키웠을 뿐입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그 헌신을 얼마나 기뻐하셨으면
다윗의 조상이 되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어 지금까지 그 이름이 아름답게 알려지고 천국에서도 유명하며 이 땅에서도 유명한 자로 만들어 주셨을까요?
여러분, 지금 우리가 하는 것들 절대로 하찮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며 기도하는 일들? 봉사하는 일들?
작은 일이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신의 자녀들? 믿음으로 키우는 일?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키웠다면 그것을 주님 기억하시고 유명하게 하십니다.
그의 가문과 삶을 축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축복을 계속 누려 가시는 여러분의 가정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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