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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일 목장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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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새새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5-08-29 07:33

본문

두인균목사입니다.
이제 후반기 목장이 시작됩니다.
목자님을 수고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축복합니다.


레아의 신앙고백, 우리의 신앙고백!
본문 - 창 29 : 31 -35절

먼저 사진 하나를 볼까요?
이 사진은 카네기 멜론 대학의 교수, 랜디 포시 가족의 사진입니다.

이 랜디 교수는 46세 젊은 나이에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퇴임이 예정되어 있던 상황에서 마지막 강의를 하게 됩니다. 강의 제목이 당신의 어릴 적 꿈, 진짜 이루기입니다.

이 강의가 거기에 참석한 분들에게 엄청난 도전과 희망을 줬다고 합니다. 그의 마지막 강연에 유명한 방송가, 오프라 윈프리도 참석했는데요. 그의 강연을 듣고 이분이 진짜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란 것이 믿기지 않아 물었답니다. 어떻게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이런 강연을 할 수 있습니까?

그때 렌디 포시 박사는 주저함 없이 바로 대답합니다.

내가 죽고 난 다음?
엄마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세 자녀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그는 마지막 힘을 내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토크쇼를 합니다.
이 토크쇼를 보도 했던 윌 스트리트 저널은 타이틀을 이렇게 붙였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매일 매일 감사하는 남자!

그가 말하는 매일 감사의 원리는 3가지 정도입니다.
첫째는, 감사를 묻어두지 말고 표현하라는 겁니다.
감사만큼 간단하면서도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상대방의 좋은 면을 보도록 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언제나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한두 사람 정도는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100%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고 기다리면 그도 좋은 면을 보여줄 때가 있다는 겁니다.
끝으로 불평, 불만 하는 것으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오늘 이 순간을 감사함으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산 사람의 한 예로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그 선수였던 재키 로빈슨을 듭니다. 이분은 1947년도에 LA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분입니다.

그 당시 미국 사회는 인종 차별이 심할 때였고 흑인들은 따로 흑인 리그에서만 뛸 수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 출전한 것은 그야말로 경이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백인들에 강한 저항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어느 정도였는가?
일부 팀 동료들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함께 경기 뛰는 것을 거부했고요. 관중석에서는 인종차별적 야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죽이겠다는 협박 편지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경기에만 전념했습니다. 결국 데뷔 첫해 뛰어난 경기력으로 신인왕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활약은 단순한 운동선수의 성공을 넘어 미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앞에 있는 장애물을 겁내지 말고 오늘 이 순간을 감사함으로 즐기세요!

근데 여러분, 어리석은 사람은 그러지를 못합니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먼저 감사거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불평거리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능력 있는 부모를 만나 인생을 저토록 쉽게들 사는데? 나는 왜 이처럼 못난 가정에 태어난 것인가? 나는 왜 이리도 자랑스럽지 못한 외모를 갖고 있는가? 왜 우리 가정은 물질적 고통을 안고 평생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공평하신 분이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는 이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이렇게 교훈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레아를 보라!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당시 자식을 잘 낳는 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레아는 못생긴 얼굴을 갖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구속 사의 족보에 올라가는 영광을 얻었다!

여러분, 무슨 애기입니까?
잘 살펴보면 각자 나름대로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복이 있다는 겁니다.
이 복을 깨달으면 우리는 감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착한 자녀를 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똑똑한 머리는 아니지만 남부럽지 않은 건강을 주신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힘든 일을 하고 살지만 행복한 가정을 주신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감사거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지요.

무슨 이야기입니까? 내겐 내 나름대로 하나님이 나에게만 주신 복이 있고 나만의 재능과 은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여러분, 내 장점? 뽐낼 것도 없고 남의 약점? 비판할 것도 없는 겁니다.

이 땅엔 모든 것을 다 가진 행복자도 없고 아무것도 못 가진 불행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런 질문은 던지면 안 됩니다. 내겐 왜? 이런 게 없어? 왜 나에게만 없는 거야?

반대로 이런 질문은 많이 던져야 합니다.
왜 부족한 나에게 이런 과분한 은혜와 복을 주신 것인가?
이런 질문은 많이 해야 합니다.
그때 어떤 상황에도 행복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감사의 삶, 행복한 삶 꼭 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앞에 15절을 보십시오. 야곱의 외삼촌 라반은 자기 집으로 피난 와서 부지런히 일하는 야곱을 보고 말합니다. 15절 같이 읽습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그때 야곱은 기뻐하며 숨겨두었던 마음을 드러냅니다. 내가 외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사랑하니 그 딸을 제 아내로 주시면 7년 머슴살이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7년의 머슴살이 후, 결혼 첫날밤을 보냅니다.

근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떻습니까?
옆에 누운 여인이 사랑하는 라헬이 아니라 그의 언니 레아였습니다.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시 칠 년을 더 섬기고 마침내 라헬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렇게 야곱은 본의 아니게 두 자매를 두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사실 레아는 야곱이 좋아할 만한 그런 얼굴 그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 31절에서 알 수 있지요?
31절 상 반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을 받지 못함을 보시고!

여러분, 이 말은 단순히 사랑받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미워하고 싫어한다는 말? 히브리어 세누아의 수동형으로 적극적으로 싫어하고 미워했다는 뜻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인 라반의 속임수에 넘어가 억지로 떠맡은 여인이 레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레아에게 사랑이 갈 리가 없었지요. 이런 레아를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31절 다시 보십시오. 같이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여기 중 반절에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레아가 남편으로부터 당하는 괄시와 미움을 하나님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시고 그를 불쌍히 여겨 라헬이 갖지 못한 자식 낳는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32절도 보십시오.

첫아들을 낳고 레아가 그 아들의 이름을 무엇이라 붙입니까? 르우벤? 르우벤은 보라는 르우와 아들이라는 벤이 합쳐져 보라, 아들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들을 낳고 레아가 무척 기뻐했다는 겁니다.

32절 하 반절을 보십시오. 레아가 이 아들을 낳고 이렇게 해석하지요.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 하리로다 하였더라!

지금까지 남편이 나를 무시하고 나를 멸시해 괴로움을 주었지만 하나님은 나를 돌보셔서 첫아들을 주셨다! 이제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 뒤 둘째 아들을 낳습니다. 그의 이름을 뭐라 붙입니까? 시므온이라!
뜻은 들으심이란 뜻입니다.
이어 셋째 아들도 낳습니다. 이름을 레위라 붙입니다. 34절입니다.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이 아들은 제사장 족속의 조상이 되는 레위입니다.
그 뒤 아들을 하나 더 얻습니다. 그 넷째 아들이 누구입니까?
유다? 다윗 왕가의 조상,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유다입니다.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35절 같이 읽습니다.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여러분, 여기 중반 절에 나오는 레아의 고백을 잘 보셔야 합니다.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러분, 앞의 이름의 뜻과 비교해 보면 어떻습니까? 완전히 다르지요.
이 부분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르우벤을 낳았을 때는 뭐라고 했습니까?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할 것이다!

그런데 유다를 낳고는 뭐라고 합니까?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완전히 다릅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냥 34절에서 35절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레아의 마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넷째를 낳기 전까지는 남편만 바라봤습니다.
아들을 낳아서 남편의 사랑을 받으리라! 거기에만 집중했습니다.
남편이 하나의 우상이었습니다. 자식 낳는 것이 우상이었습니다.
자식만 많이 낳으면 남편의 마음을 얻을 줄로 알았습니다.

근데 안 되는 겁니다.
여전히 자기가 기대했던 남편의 사랑은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근데 넷째 아들을 낳고 그의 고백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180도 바뀝니다.
이제는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제는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남편에서 하나님으로 관심이 바뀐 것입니다.
내가 여태까지 추구했던 하나님 대용의 우상을 버린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의 어려움을 아시고 나의 아픔을 아시고 계속 아들을 주셨던 하나님!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붙들고 살겠다!
이 고백이 셋째 아들과 넷째 아들 사이에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제 관심이 달라졌습니다. 바라보는 것도 달라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엉뚱한 것을 바라보다가 절망했습니다. 좌절했습니다.
마땅히 바라보아야 할 것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엉뚱한 것을 보니까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내 아픔을 아시고 계속 아들을 주신 그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는 그 하나님 붙들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겠습니다!

참 아름다운 변화 아닙니까?
이런 변화가 여러분의 삶에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도 연약한 점이 있습니다. 예쁜 옷 입고 이렇게 앉아 있으니까 별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 아픔이 있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상처들이 있습니다.

그런 과거의 상처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가 어렵고 그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고 고독 속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레아를 보세요. 레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보시기 바랍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아버지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한 상처 많은 그녀의 핏줄을 타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이 태어났습니다. 모세도 태어났습니다. 결국은 그 가문을 통해 예수님도 태어났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얼마나 깊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은혜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자, 작은 자, 상처받은 자를 향해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약점들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부족함을 나누는 일에 주저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까지도 사랑하십니다.
그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나의 모습 속에서 나도 실망하고 내 남편 내 아내까지도 싫어하는 그 부분까지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조건과는 상관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셔서 십자가 지신 그 주님의 눈으로 우리를 보시고 정말 우리의 모든 것을 사랑하십니다. 그럼으로 함부로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다! 성급하게 판단하지 마십시오.

함부로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남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자기의 독생자 아들까지 여러분들을 위해 내어 주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이 한해 남은 시간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양 -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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