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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목장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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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새새
댓글 0건 조회 301회 작성일 24-03-3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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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첫 주일 금요일 목장 나눔입니다.
이번주도 주안에서 화이팅하십시오.
감사합니다.


탄식에서 생명의 부활로!
본문 – 시편 22편 1 - 2절

어느 교회 선생님이 아이들을 모아 놓고 질문했습니다.
길이가 한 15센티 정도 되고 털이 많은 동물이다!
그리고 나무를 기어오르고 도토리를 모아 두는 동물인데 무엇일까?
답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세 번 질문을 반복해서 대답을 유도하고서야 한 아이가 용기를 내서 조심스럽게 대답합니다. 제 생각에 다람쥐 같은데 정답은 예수님이지요!

여러분, 이 답? 어떻습니까? 제 생각에 다람쥐인데 정답은 예수님이지요!
교회에서는 무슨 질문을 하든지 답이 예수님이어야 한다는 세뇌 교육의 효과입니다.

설령 언제나 답은 예수님이어야 한다고 해도 그것은 깊은 사고의 결과에서 나온 것이어야 되지 정해진 결과에 대한 자동반사적인 반응이 될 때는 그것이 정답이라 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저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여러분께 하려 합니다. 답을 잘하셔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역사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일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일어나도록 주관하고 섭리하고 계십니다. 그 사람이 누구일까요? 정답은 두 인균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제 삶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요? 이제 얼마나 세심한지?

여러분께 또 묻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남편 아내 만난 것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만난 것임을 믿습니까?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만난 것임을 믿습니까?

보십시오. 제가 아내를 만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보십시오.

저의 장모님과 장인 어른을 만나게 하시고 결혼하게 하셨습니다.
집사람을 낳게 하게 하기 위해서요. 
또 저의 아내가 저를 만나게 하기 위해 안계에서 대구로 보냈습니다.
학교 졸업 후 제가 전도사로 섬기는 교회 앞에 직장생활을 하게 했습니다.
 
저의 아내가요. 본 교회는 칠곡에 있었는데요. 수요일 예배 때 저희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때 제가 가끔 수요일 예배 때 설교를 했는데요.
저의 설교를 들으면서 저 사람이 내 배우자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겁니다. 누가 그런 마음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이시지요. 제가 뭐라고?

하나님이 배후에서 하신 역사들을 보세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그러나 실은 하나님이 정말 위대하신 분이시지요.

수십억의 사람들이 우주와 역사의 중심에 자신을 두도록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1955년 12월 1일에 미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때는 흑인 차별이 아주 심할 때였습니다.

로사 라는 흑인 여성이 버스를 탔습니다.
백인 전용 좌석 바로 뒤에 흑인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았는데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 백인이 앉을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로사 부인에게 일어날 것을 요구했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몹시 마음이 상해 거부했다가 체포당하고 말았습니다.
근데 이 사건이 미국에서 소수 민족 전체의 인권을 회복시키고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위대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일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게 믿습니까? 예 저도 100%로 믿습니다.
근데 그게 의심이 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인가?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오늘 시인 보십시오. 하나님의 침묵? 그게 문제였습니다.
입을 다물고 조용히 계시는 하나님이 시인에게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데 지금 침묵하십니다.
그게 너무 안타까워 시인은 탄식합니다. 2절 보십시오.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이것은 오늘 이 시인만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109편으로 가 보십시오.
1절입니다.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이 하나님의 잠잠하심? 침묵?
이것은 그 옛날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시대에 걸쳐 신자들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번민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 모든 시대의 신자들은 길을 잃어 방황하고 어쩔줄 몰라 좌절하기도 하고 종국에는 절박한 상황에 서는 것을 경험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늘 말씀하신다는 확신 속에 살아갑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할 줄 몰라 의기소침해지고 모든 삶의 의욕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오늘 시인처럼 이렇게 부르짖는 것입니다.
오,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발을 비추는 등불이요, 우리가 걷는 길을 비추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이 빛이 꺼지면 우리는 돌에 걸려 넘어지거나 길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건가요?
왜 하나님은 때로 상당 시간 동안 가만히 계시는 것인가요?

그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려 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잘못된 행동을 고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를 갖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한 가지 예가 있습니다.
출 애 굽기 3장에 보면 모세가 불타는 가시덤불을 보고 의아해서 가까이 갔지요.
불이 붙었지만 타지 않는 가시덤불이 궁금했던 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경고하십니다.

모세야, 가까이 오지 마라!
네 발의 신을 벗어라! 너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다!

하나님 앞에서 무례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일정한 예법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려 하신 거지요.
신발을 벗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실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겁니다. 먼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입니까? 신을 벗는 마음? 정말 겸손한 마음?
 듣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66장 2절의 말씀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나아가는 그래서 하나님이 돌봐주시는 은혜를 입는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 더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이유가 뭔가?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려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자기 방에서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손주가 문을 두드립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이상했습니다.

분명히 방안에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계속 문을 두드리지만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버럭 화를 내면서 참을성을 잃고서 소리를 지릅니다. 근데도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직 그 아이에게 줄 할아버지의 준비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종종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 더 귀한 선물을 주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귀한 선물이 대개는 성숙입니다.
이 성숙을 선물하기 위해 하나님은 때로 침묵하신다는 것입니다.

실제 성숙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응답되지 않는 질문들에 갈등하며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서입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번민할 때 우리는 점점 성숙해져 갑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저 좋은 것을 주기 위해 준비하고 계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종종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우리에게 더 큰 믿음과 성숙함을 주셔서 바울처럼 이런 고백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8장 31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8, 39절도 보십시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런 고백이 여러분들의 입에서도 나오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도 미래에도 살아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언제나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침묵하시는 그 순간에도 사실은 우리에게 뭔가를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본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오늘을 우리는 부활 주일로 지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살아나신 후 제자들은 예수님을 찾기 위해 무덤으로 갔습니다.
무덤에 도착했을 때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굴러져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 의아해하고 어쩔줄 몰라하던 제자들을 향해 천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너희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산 자를 찾느냐?
왜 너희는 과거의 무덤에서 살아 있는 주님을 찾으려 하느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셨느니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은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이제 여기 이곳에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계시고요. 우리의 문제 가운데 고통 가운데 계십니다.
아니 우리보다 한걸음 먼저 우리가 있어야 할 미래에 가 계십니다.

내일 여러분이 직장에 출근하면 주님이 먼저 가 계셔서 여러분은 맞이해 줄 것입니다. 먼저 가셔서 우리를 만나 주기 위해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 주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시고 그 주님과 함께 늘 사는 여러분의 남은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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