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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목장나눔 - 추수감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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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새새
댓글 0건 조회 415회 작성일 23-11-1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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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님들 수고 많습니다.
이제 행복 축제가 얼마나 남지 않았습니다.
모이기를 힘써 주시고 많은 기도 바랍니다.


추수 감사 주일 – 감격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본문 – 요한 9장 1 - 7절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한 맹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실은 이 9장 전체가 이 맹인에 대해 의미 깊게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 나면서부터 맹인된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길거리에서 손을 내밀고 구걸하는 거지였습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오늘도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고 있는데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 일행이 그 앞을 지나갑니다.

웅성웅성 소리가 납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제자들과 함께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근데 바로 내 앞에까지 왔구나? 싶은 그때에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는 것입니다. 2절이지요.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원 세상에? 이처럼 모욕적인 말이 어디 있습니까?

맹인이 된 것도 서러운데 게다가 죄 때문이라니요?

날 때부터 맹인이었는데 죄 때문이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렇게 모욕적이고 굴욕적일 수가 없습니다.

제가 그 사람의 입장이었다면 아마 한 마디를 쏘아붙였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자, 제자들이 한 질문에 대한 주님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3절이지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여러분, 이 예수님의 답변?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아주 충격적이고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이 죄로 인해 세상에 들어왔고 그 고난의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 고난의 책임이 부모에게 있는가 본인에게 있는가를 물은 겁니다.


근데 주님은 아니라 하십니다.

누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가 나면서부터 맹인이 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져야 합니다.


고난받는 사람들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이 도대체 무엇인가?

고난이 사라지는 것일까요? 병이 낫는 것일까요?


그러니까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단순히 병이 낫도록 하거나 고난 없이 편안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이 아닌 겁니다.

설령 주님이 병을 고쳐주셨다 할지라도 그것은 궁극적인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나타내고 싶은 하나님의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9장 35절에 잘 나타납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이 맹인이 출교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35절 같이 읽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그때 맹인이 다시 묻습니다. 36절 보십시오.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그러자 주님이 이렇게 답을 하지요. 37절 하 반절이지요.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이 주님의 말씀에 그는 땅에 엎드려 고백합니다. 38절입니다.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물론 맹인이 눈을 뜬 것은 놀라운 체험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영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므로 그것이 그동안 그가 겪은 고난의 보상이 될 수가 없는 거지요.

 
그의 눈을 뜨게 하신 일은 그가 주님 앞에 엎드려 내가 주님을 믿습니다! 고백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게 하기 위한 수단이 될 때에야 그 고난이 억울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나타내시는 일이 당장 여러분의 시급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장은 그 말이 더 위로가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맹인이 장애를 가지고 산 것은 주님이 그를 고쳐주심으로 주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고요.

그의 남은 삶을 주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타내기 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나타내기 원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이해가 되시면 크게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 더 살펴볼 것은 예수님이 이 맹인을 고쳐주시는 방법입니다.

참으로 특이하지요. 6, 7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여기에 의문이 있습니다.
맹인의 눈도 눈이잖아요.
 작은 티끌 하나만 들어가도 아픈데 진흙을 바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이 사람은 다 참습니다. 그뿐입니까?

 

당장 눈을 뜨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거기까지 거리가 10리입니다.

보통 사람도 한 시간 이산 걸리는 거리인데 소경의 몸으로는 족히 네 시간을 가야 할 것입니다.

지팡이를 의지해 십리 길을 어정어정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라면 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아니 이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 주님께 순종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눈에 침을 뱉은 것 같고 거기에 진흙까지 발라 답답함이 더해지는 가운데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야 하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세상 유혹의 소리를 따르지 않고 끝까지 주님의 음성을 따라가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할 때에도 우리의 삶에 주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하고 계심을요.
그래서 우리의 삶은 그분의 계획안에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

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의 길 걸어갈 수 있는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여러분들 되길 축복합니다.


끝으로 하나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좋은 일에 시비를 거는 자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왜 안식일을 범하느냐!

여러분, 안식일은 어떻게 지켜야 잘 지키는 것입니까?

낮잠을 자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입니까?

안식일도 생산적으로 지키면 안 되는 겁니까?


예수님 말씀대로 맹인이 눈을 떴으니 이것이야말로 참 훌륭한 안식일이 되는 것 아닙니까?

정말 기쁘고 복된 일이잖아요.

근데 왜 쓸데없는 규례 때문에 비판하고 트집을 잡는 겁니까?


생각해 보면 얼마나 따분하고 답답한 일입니까?

왜 이 감격에 동참하지 못합니까?

왜 함께 축하하고 격려해 주지 못합니까?

이 맹인 보십시오. 그의 마음은 단순한 마음이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포함해서 함정에 빠뜨리려 할 때 그는 말합니다.

25절이지요.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 이다!


여기에 깨끗한 신앙, 깨끗한 지식이 있습니다.

지식은 근심을 더한다고 합니다. 요새는 너무 많이 알아 걱정입니다.

별로 필요지 않는 것을 잔뜩 알아가지고 그것 때문에 골머리가 아픕니다.

그러나 이 맹인은 깨끗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깨끗한 지식? 이 단순한 마음? 거기에 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 감격, 그 신앙은 경험에 기초해 있습니다.

그렇게 경험에 기초한 신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론이나 신학이 아닙니다. 합리주의적 변증이 아닙니다. 다만 주의 은혜를 받은 체험일 뿐입니다.

나를 눈뜨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날이 안식일인지 아닌지 이 맹인으로서는 알 바가 아닙니다.

다만 내 눈이 떠졌다고 하는 깨끗한 체험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이 뭐라 하든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다?

예수님이 나의 눈을 뜨게 해 주셨다? 하는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이 직접적인 은혜 체험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어쩌면 나만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기에 실패도 있고 절망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난날의 뼈 아픈 체험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그렇게 해석할 수는 없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개인적으로 이 사랑을 깨달을 때 감격의 사람, 감사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친히 누가복음 15장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잔치가 벌어진다고요.

잃었던 양을 한 마리를 찾아가지고 돌아와서 동네 사람들을 모아 함께 즐기자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까?

이 감격을 중심으로 한 축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나를 쓰신다는 그 은혜와 저 앞에 약속된 천국을 바라보면서 오늘 감사로 사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전 삶을 주를 위해 드렸습니다.

삭개오는 그 감사 때문에 자기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윗은 그 감격 때문에 법궤 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이 은혜에 감격한 생은 매일매일 축제입니다.

이 축제 안에 화해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이 축제 안에 은혜가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오늘 추수 감사 주일!

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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