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목장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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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님들 수고 많습니다. 10월 첫 주일 목장 나눔지입니다.
한 주간도 주님안에서 승리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산 남자들(1) 에녹!
본문 – 창세기 5장 21 –24절, 히브리서 11장 5, 6절
우리 사람은 무엇인가 믿는 것이 있어야 불안해하지 않고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엄마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엄마가 있으면 안심을 하지만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안아주면 조금 안겨 있다가 거기서 빨리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개들도 주인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자기 주인이 오면 달려들면서 반갑게 대해 주지만 모르는 사람이 자기를 만지려 하면 짖거나 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집이 있고 은행 통장에 몇백만 원이라도 저축된 것이 있으면 당장 쫓겨나거나 굶어 죽을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집이 아니고 세 든 집이든지 혹은 은행에 저축된 돈이 전혀 없으면 마음이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무슨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대로 고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이 세상에서 구체적인 것들 예를 들면 집이나 돈, 안정된 직장 같은 것을 확보해 놓으려 합니다.
근데 오늘 본문에서는 정반대 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실체가 아니고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그림자라는 것은 실체가 아닙니다. 그림자는 그야말로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손으로 잡을 수 없고 그것이 무슨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실체가 없어지거나 빛이 없어지면 그림자도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을 줄여서 믿는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다고 할 때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인가? 이게 중요합니다.
무엇을 믿는 믿음인가?
많은 사람은 자기의 생각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대학에 합격할 것이며 나에게 좋은 직장이 생길 것이며 나는 행복할 것이라고 믿을 때 그대로 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일종의 신념입니다.
그것은 실은 자기 생각을 믿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신념도 없는 것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종의 좋은 호르몬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즉 기분도 좋아지고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신념은 너무 강한 적을 만나면 힘을 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지고 맙니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고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벽에다 그림자놀이를 많이 했습니다. 촛불이나 호롱불을 켜면 벽에 그림자가 생기는데 손으로 여우 모양이나 나비 모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양을 만들어서 노는 것이지 실체는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을 때 반드시 하나님이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 보세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말씀대로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는 겁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주장하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다 간섭하고 계시며 늘 우리를 돕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아멘 입니까?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신다는 사실도 믿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믿을 때 어떤 상을 주실까요?
물론 세상의 상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을 주십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지혜를 주시고요.
주안에서의 기쁨도 주시고요. 영원한 생명도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렇게 믿음으로 살다가 그런 은혜를 입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예, 에녹입니다.
근데 오늘 본문에서 에녹의 삶을 보면 어떻습니까? 어떤 특별한 것이 있습니까? 없지요. 창세기 5장 22절 같이 읽습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 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여러분, 이게 다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특별한 것이 있습니까? 없지요.
아브라함처럼 제단을 쌓아 후세에 남긴 것도 아니고요.
이삭과 같이 우물을 많이 파서 남긴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 에녹의 인생은 미미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얼마나 귀하게 보셨는지 이 땅에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저 천국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럼 여기서 이런 질문이 생기잖아요. 에녹의 삶에서 도대체 하나님이 무얼 그렇게 귀히 보신 것인가? 우리가 볼 때 기껏해야 아들, 딸 낳은 것이 다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것은 동행입니다. 아들, 딸 낳는 지극히 평범한 삶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귀히 보신 겁니다.
어떤 사람은 감각적인 생각, 욕심에 끌려 삽니다.
욕심과 동행하는 거지요.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못 듣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하나님을 느끼며 삽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고 하나님의 심판을 느끼고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느끼며 사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삶?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로든 나가 보십시오.
아이들이 그저 제멋대로 노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뛰놀고 저렇게 뛰놀고 또 때론 말썽도 부리고 하지만 실은 아주 정확하게 압니다.
여기 가까이에 어머니가 계신다! 그 어머니가 자기를 지켜 보고 계신다!
순간순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당해 울음을 터뜨리면 당장 달려올 것이다! 이렇게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안하고 때로는 용기도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동행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안에서 자유하는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더라!
이 동행을 예수님은 양과 목자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양은 목자를 믿고 따라갑니다. 어디로 가느냐 묻지 않습니다. 그저 목자를 따라갈 뿐입니다.
이 목자의 생을 경험한 다윗의 고백 들어보십시오. 시편 23편 4절이지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게 동행입니다. 목자와 동행합니다. 목자를 믿고 따라갑니다.
아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갈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요? 목자 되신 주님이 나와 함께 가시니? 주님이 나와 동행하시니까요.
목자가 다 알고 나를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니까요.
그저 줄레줄레 따라가면 되는 것이지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지금 여러분은 누구와 동행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마음 중심에 항상 주님이 계시고 여러분이 그 주님을 느끼고 그 주님을 믿고 그 주님이 주신 약속 붙들고 따라가는 삶?
양이 목자를 따라가듯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남은 삶이 그러하길 축복합니다.
자, 끝으로 하나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녹이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 비결이 뭔가?
그 답은 에녹이 65세에 낳은 아들의 이름에 있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므두셀라이지요.
이 므두셀라의 이름의 뜻이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뜻입니다.
성경학자 뉴베리에 따르면 본래의 뜻은 창 던지는 사람인데
고대 부족들은 전쟁에서 상대 부족의 창 잘 던지는 사람만 처치하면 그 부족은 끝장난다는 데서 그런 뜻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에녹이 아들을 낳기 전 하나님이 그 시대의 악함을 보시고 너가 아들을 낳거든 므두셀라? 곧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라고 지으라 하신 것이지요.
그러니 그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다가올 심판을 생각했을 것이고 그 심판의 때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어진 것입니다.
신약 성경 유다서 14, 15절에 보면 에녹이 선지자가 되어서 그 시대에 예언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같이 읽습니다.
아담의 칠 대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여러분, 이런 말씀들을 종합해 볼 때 에녹은 65세까지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그가 첫아들 므두셀라를 낳으면서 그가 하나님께 받은 약속의 말씀? 하나님이 주신 아들?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메시지를 받은 후부터는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로 그다음 날부터 옛날의 삶을 다 청산하고 자신의 삶을 뜯어고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교제를 맺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는 물리적인 계기들을 놓치지 말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계기를 주십니다.
그 계기를 놓치면 안 됩니다.
여러분에게 어느 날 특별한 말씀을 주십니다.
그럼 그 말씀을 꽉 붙들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또 어떤 때는 특별한 은혜들을 주십니다. 예를 들면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겁니다.
율하동에서 용계로 갔습니다. 목사님, 예배를 드려주세요? 해서 갑니다.
이때 드리는 예배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푸닥거리도 아니고 집 떨이도 아닙니다. 그 집의 봉헌식이고요. 가정 교회를 하나님께 드리는 헌당식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향해 믿음의 기념비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더 나은 믿음 생활, 말씀 생활, 기도 생활하겠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 생활을 마치고 이제 마지막 모압 평지에 섰습니다.
이제 요단강만 건너가면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가나안 땅이 다 보입니다.
그때 야, 고생 끝에 낙이라더니! 이제 고생 끝났다!
이제 저 가나안에 가서 마음껏 즐기면서 살자!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모아서 한 것이 무엇입니까?
설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게 바로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신명기는 영어로 듀터로노미?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강론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너희들, 이제 곧 하나님이 약속한 축복의 땅으로 들어간다!
그 땅에 들어가면 광야 생활과는 다르게 안정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들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집도 생기고 은금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 때에도 하나님을 제일로 섬겨야 한다? 그렇게 할래?
예, 그렇겠습니다! 아멘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좋은 집으로 인도하십니까? 그 집에 빠지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이상하게 돈이 많이 생깁니까? 그 돈에 붙들리지 마십시오.
그때 더욱 하나님을 기억하시고요. 하나님께 더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계기로 만들라는 겁니다.
반대로 지금 여러분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찾아왔습니까?
사업이 어렵습니까? 어떤 질병이 여러분을 찾아왔습니까?
그런 때에도 낙망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때에도 축복의 계기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런 때에도 뒤로 물러서지 마시고 더욱 하나님 붙들고 믿음 위에 서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에녹의 신앙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계기로 받은 하나님의 말씀? 그 한 말씀, 한 말씀을 부여잡고 그 말씀에 올인하는 그 모습이 바로 에녹의 신앙, 믿음이라고 여깁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시대가 굉장히 힘듭니다.
절대적인 진리인 말씀이 상대화되고 있습니다.
동성애 합법화 시도로 성경 진리가 훼손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 가치관이 흔들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주를 떠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한 주간도 주님안에서 승리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산 남자들(1) 에녹!
본문 – 창세기 5장 21 –24절, 히브리서 11장 5, 6절
우리 사람은 무엇인가 믿는 것이 있어야 불안해하지 않고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엄마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엄마가 있으면 안심을 하지만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안아주면 조금 안겨 있다가 거기서 빨리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개들도 주인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자기 주인이 오면 달려들면서 반갑게 대해 주지만 모르는 사람이 자기를 만지려 하면 짖거나 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집이 있고 은행 통장에 몇백만 원이라도 저축된 것이 있으면 당장 쫓겨나거나 굶어 죽을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집이 아니고 세 든 집이든지 혹은 은행에 저축된 돈이 전혀 없으면 마음이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무슨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대로 고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이 세상에서 구체적인 것들 예를 들면 집이나 돈, 안정된 직장 같은 것을 확보해 놓으려 합니다.
근데 오늘 본문에서는 정반대 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실체가 아니고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그림자라는 것은 실체가 아닙니다. 그림자는 그야말로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손으로 잡을 수 없고 그것이 무슨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실체가 없어지거나 빛이 없어지면 그림자도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을 줄여서 믿는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다고 할 때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인가? 이게 중요합니다.
무엇을 믿는 믿음인가?
많은 사람은 자기의 생각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대학에 합격할 것이며 나에게 좋은 직장이 생길 것이며 나는 행복할 것이라고 믿을 때 그대로 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일종의 신념입니다.
그것은 실은 자기 생각을 믿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신념도 없는 것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종의 좋은 호르몬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즉 기분도 좋아지고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신념은 너무 강한 적을 만나면 힘을 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지고 맙니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고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벽에다 그림자놀이를 많이 했습니다. 촛불이나 호롱불을 켜면 벽에 그림자가 생기는데 손으로 여우 모양이나 나비 모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양을 만들어서 노는 것이지 실체는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을 때 반드시 하나님이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 보세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말씀대로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는 겁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주장하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다 간섭하고 계시며 늘 우리를 돕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아멘 입니까?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신다는 사실도 믿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믿을 때 어떤 상을 주실까요?
물론 세상의 상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을 주십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지혜를 주시고요.
주안에서의 기쁨도 주시고요. 영원한 생명도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렇게 믿음으로 살다가 그런 은혜를 입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예, 에녹입니다.
근데 오늘 본문에서 에녹의 삶을 보면 어떻습니까? 어떤 특별한 것이 있습니까? 없지요. 창세기 5장 22절 같이 읽습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 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여러분, 이게 다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특별한 것이 있습니까? 없지요.
아브라함처럼 제단을 쌓아 후세에 남긴 것도 아니고요.
이삭과 같이 우물을 많이 파서 남긴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 에녹의 인생은 미미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얼마나 귀하게 보셨는지 이 땅에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저 천국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럼 여기서 이런 질문이 생기잖아요. 에녹의 삶에서 도대체 하나님이 무얼 그렇게 귀히 보신 것인가? 우리가 볼 때 기껏해야 아들, 딸 낳은 것이 다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것은 동행입니다. 아들, 딸 낳는 지극히 평범한 삶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귀히 보신 겁니다.
어떤 사람은 감각적인 생각, 욕심에 끌려 삽니다.
욕심과 동행하는 거지요.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못 듣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하나님을 느끼며 삽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고 하나님의 심판을 느끼고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느끼며 사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삶?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로든 나가 보십시오.
아이들이 그저 제멋대로 노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뛰놀고 저렇게 뛰놀고 또 때론 말썽도 부리고 하지만 실은 아주 정확하게 압니다.
여기 가까이에 어머니가 계신다! 그 어머니가 자기를 지켜 보고 계신다!
순간순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당해 울음을 터뜨리면 당장 달려올 것이다! 이렇게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안하고 때로는 용기도 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동행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안에서 자유하는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더라!
이 동행을 예수님은 양과 목자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양은 목자를 믿고 따라갑니다. 어디로 가느냐 묻지 않습니다. 그저 목자를 따라갈 뿐입니다.
이 목자의 생을 경험한 다윗의 고백 들어보십시오. 시편 23편 4절이지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게 동행입니다. 목자와 동행합니다. 목자를 믿고 따라갑니다.
아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갈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요? 목자 되신 주님이 나와 함께 가시니? 주님이 나와 동행하시니까요.
목자가 다 알고 나를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니까요.
그저 줄레줄레 따라가면 되는 것이지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지금 여러분은 누구와 동행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마음 중심에 항상 주님이 계시고 여러분이 그 주님을 느끼고 그 주님을 믿고 그 주님이 주신 약속 붙들고 따라가는 삶?
양이 목자를 따라가듯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남은 삶이 그러하길 축복합니다.
자, 끝으로 하나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녹이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 비결이 뭔가?
그 답은 에녹이 65세에 낳은 아들의 이름에 있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므두셀라이지요.
이 므두셀라의 이름의 뜻이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뜻입니다.
성경학자 뉴베리에 따르면 본래의 뜻은 창 던지는 사람인데
고대 부족들은 전쟁에서 상대 부족의 창 잘 던지는 사람만 처치하면 그 부족은 끝장난다는 데서 그런 뜻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에녹이 아들을 낳기 전 하나님이 그 시대의 악함을 보시고 너가 아들을 낳거든 므두셀라? 곧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라고 지으라 하신 것이지요.
그러니 그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다가올 심판을 생각했을 것이고 그 심판의 때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어진 것입니다.
신약 성경 유다서 14, 15절에 보면 에녹이 선지자가 되어서 그 시대에 예언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같이 읽습니다.
아담의 칠 대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여러분, 이런 말씀들을 종합해 볼 때 에녹은 65세까지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그가 첫아들 므두셀라를 낳으면서 그가 하나님께 받은 약속의 말씀? 하나님이 주신 아들?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메시지를 받은 후부터는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로 그다음 날부터 옛날의 삶을 다 청산하고 자신의 삶을 뜯어고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교제를 맺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는 물리적인 계기들을 놓치지 말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계기를 주십니다.
그 계기를 놓치면 안 됩니다.
여러분에게 어느 날 특별한 말씀을 주십니다.
그럼 그 말씀을 꽉 붙들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또 어떤 때는 특별한 은혜들을 주십니다. 예를 들면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겁니다.
율하동에서 용계로 갔습니다. 목사님, 예배를 드려주세요? 해서 갑니다.
이때 드리는 예배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푸닥거리도 아니고 집 떨이도 아닙니다. 그 집의 봉헌식이고요. 가정 교회를 하나님께 드리는 헌당식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향해 믿음의 기념비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더 나은 믿음 생활, 말씀 생활, 기도 생활하겠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 생활을 마치고 이제 마지막 모압 평지에 섰습니다.
이제 요단강만 건너가면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가나안 땅이 다 보입니다.
그때 야, 고생 끝에 낙이라더니! 이제 고생 끝났다!
이제 저 가나안에 가서 마음껏 즐기면서 살자!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모아서 한 것이 무엇입니까?
설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게 바로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신명기는 영어로 듀터로노미?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강론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너희들, 이제 곧 하나님이 약속한 축복의 땅으로 들어간다!
그 땅에 들어가면 광야 생활과는 다르게 안정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들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집도 생기고 은금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 때에도 하나님을 제일로 섬겨야 한다? 그렇게 할래?
예, 그렇겠습니다! 아멘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좋은 집으로 인도하십니까? 그 집에 빠지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이상하게 돈이 많이 생깁니까? 그 돈에 붙들리지 마십시오.
그때 더욱 하나님을 기억하시고요. 하나님께 더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계기로 만들라는 겁니다.
반대로 지금 여러분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찾아왔습니까?
사업이 어렵습니까? 어떤 질병이 여러분을 찾아왔습니까?
그런 때에도 낙망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때에도 축복의 계기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런 때에도 뒤로 물러서지 마시고 더욱 하나님 붙들고 믿음 위에 서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에녹의 신앙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계기로 받은 하나님의 말씀? 그 한 말씀, 한 말씀을 부여잡고 그 말씀에 올인하는 그 모습이 바로 에녹의 신앙, 믿음이라고 여깁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시대가 굉장히 힘듭니다.
절대적인 진리인 말씀이 상대화되고 있습니다.
동성애 합법화 시도로 성경 진리가 훼손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 가치관이 흔들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주를 떠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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