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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목장 나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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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새새
댓글 0건 조회 585회 작성일 23-06-11 13:21

본문

이번주 목장나눔입니다.
목자님들 참조 하세요. 늘 감사합니다.


제목 : 언제나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하라!
본문 : 사사기 4장 1 - 5절 (찬송 / 86장)

1) 아이스브레이크

-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본문 요약 - 오늘 본문은 드보라라는 여자도 능력이 있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연약한 여인을 통해서 큰 일을 하실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3) 함께 나누기(1)

1절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1절 말씀을 읽고 “또”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 것 같습니까?

4) 함께 나누기(2)

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이 4절의 말씀에 의하면 드보라는 어떤 사람입니까?

5) 함께 나누기(3) 드보라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6) 함께 기도 - 서로 기도할 제목을 나누시고 기도해 주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언제나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하라!
본문 – 사사기 4장 1 - 5절

 
여러분, 혹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제목을 가진 영화를 보셨습니까?
저는 이 영화를 참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우선 그 제목이 멋있습니다.
거기 보면 주인공 남자가 참 괴팍한 사람입니다.

어느 정도인가? 식당에 가는데 자기 숟가락 가지고 가서 먹습니다.
좌우간 얼마나 깨끗하게 구는지 모릅니다.
걸어 다닐 때도 신발에 뭐가 묻을까봐 별나게 걷습니다.

비누도 딱 한 번 쓰고 안 씁니다. 노총각이 되도록 장가를 못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여자를 서서히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사랑의 고백이 이루어져야 될 때가 되었는데 이 사람은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사랑한다는 말도 할 줄 모르고 사랑의 표현을 할 줄 모릅니다.
여자가 답답해 못 견딜 지경입니다.
이 사람이 도대체 날 사랑하기는 하는 건가? 너무 궁금해 묻습니다.

당신 정말 날 사랑하나요? 이때 남자가 대답한 말이 썩 인상적입니다.

나는 사랑이 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을 좋아하면서부터 내가 달라졌습니다!
 야, 기막힌 표현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사랑이 뭡니까?

도대체 이십 년, 삼십 년 더불어 살면서 하나도 안 달라지는 사람이라면 참 답답한 사람들입니다.
근데 그 영화의 남주인공은 여자를 좋아하고부터 자기도 모르게 슬슬 달라진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Becoming others! 입니다. 내가 상대방처럼 변하는 겁니다.
그 사람이 좋으니까 좋다 보니까 그 사람이 먹는 음식이 좋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색깔도 좋아 보입니다.
요새 보면 개성이라나 뭐라나 하면서 상대가 이것 하면 나는 저것 해야만 자기 존재가 사는 줄 아는 모양인데 사랑이 뭔지 모르는 맹추들입니다.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슬슬 변하는 겁니다. 나로 모르게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우리와 같아지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같아진다는 것?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하면 같아집니다. 닮습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러분들 되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근데 오늘 본문을 잘 보십시오.
주의 엄청난 사랑을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이는 모습이 어떠합니까?
먼저 1절을 보십시오.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짧은 한 구절이지만 많은 진리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특히 한 단어가 저의 눈에 크게 뜁니다. 그것은 또! 입니다.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또? 즉 지금 이스라엘이 짓고 있는 그들의 죄는 생소한 일이 아니라 이미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지금 계속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난 80년 전 에훗 때 행해졌던 죄악이 더 거슬러 올라가면 120년 전 옷니엘 때에도 행해졌던 그 죄악이 지금 새 시대에 와서도 여전히 또 재연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죄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오늘 우리에게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죄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내 인생에는 얼마나 많은 죄가 반복되고 있는가?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아 다시 정죄함이 없게 된 신자로서 나는 과거와 다름없이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나를 보시는 하나님께서 깊은 탄식으로 또 죄를 짓고 있구나 라고 탄식하시는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으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그 죄에서 벗어나며 사는 삶이라야 하나님을 탄식하게 하지 않고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의 권고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러분의 남은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하나 더 생각할 것은 다시 1절 보십시오. 함께 1절 읽습니다.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매!

여러분, 이 1절? 어떻게 들립니까?
에훗이 죽으니! 그다음 말씀이 이스라엘 자손이 또 악을 행하매!

이스라엘 자손이 악을 다시 행하게 된 이유가 에훗이 죽은 뒤라는 거지요. 이 표현은 사사기에서 아주 특이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앞선 옷니엘이나 뒤에 나오는 드보라의 경우에는 나오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어쩌면 에훗이 다른 사사에 비해 더 영향력이 있는 사사였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이 말은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에서 이 내용을 기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의 의지처가 바로 에훗이라는 사람에게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에훗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가 죽자 곧바로 타락의 길로 빠져 버린 것입니다.

아주 귀한 교훈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는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바탕이 반드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의 바탕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사람입니까?
어떤 조건이나 환경에 두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의 신앙의 의지처는 어디인가?

하나님이 나에게 사업의 축복을 주시고 건강의 축복을 주시고 자녀들의 형통함을 주셔서 신앙생활을 잘해 왔다고 생각된다면
만일 그런 것이 사라졌을 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욥의 아내처럼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버리라고 소리치겠습니까?
아니면 욥처럼 주신 자도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까

좋은 환경이 신앙의 의지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를 의지하느냐? 어디에 내 신앙생활의 바탕을 두고 있느냐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이 신앙의 의지처가 되길 축복합니다.

이제 2, 3절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여기 나오는 야빈은 막대한 힘을 가진 자로서 철 병거가 900승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변변한 무기 하나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공할 만한 무기였습니다.

야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한계였습니다.
근데 야빈은 이 무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히 학대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상당히 강도 높은 핍박입니다.

이때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그들은 이름만 이스라엘이었을 뿐 말씀으로 진정 거듭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심한 고난은 머리로만 생각하고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자기 입으로 기도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교만한지 웬만큼 어려운 상황에서는 하나님께 부르짖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계속 자기 머리를 굴리면서 인간적으로 빠져나갈 구명을 찾지요.
더 구석으로 몰려야 비로소 눈에서 눈물이 나오고 입에서 부르짖음이 터져 나옵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자기 신세가 억울해서 웁니다.

내가 왜 이런 집에 태어나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
내가 왜 이런 집에 시집와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그런 한탄을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울어요.
그러다가 고통의 시간이 좀 더 길어지면 그런 원망이 누그러들면서 정말 문제는 자기의 불신앙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집니다.

그러면 기도 제목이 바뀝니다.

왜 나만 이렇게 어려울까? 하는 것에서 나는 왜 이렇게 믿음이 없는가?
나는 왜 자꾸 이런 죄에 반복해서 지을 수밖에 없는가?

이런 것으로 기도 제목이 바뀌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시간이 다 되어진 것입니다.

자, 4절, 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 어려운 때를 위해 준비한 사람이 나오지요.
어 근데 그는 여자였습니다. 주부 출신 드보라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그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여러분, 이 부분 잘 보셔야 합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드보라는 어떤 사람입니까?
일단 여성이지요. 그리고 가정을 이룬 한 남편의 아내이지요.
근데 사사였다는 겁니다. 참 놀라운 사실이지요.

그 많고 많은 남성들을 제쳐 두고 여성이 사사로 부름을 받았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위기의 순간에 이스라엘을 건지는데 사용한 사람은 평범한 주부 출신 드보라였습니다.
그는 여 선지자라 해서 혼자 산에서 기도하며 몇십 년을 보낸 그런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있고요. 아이가 있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말씀 하나로 이스라엘을 20년간이나 깊은 잠에서 깨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뭔가? 그것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돈도 나의 신앙을 깊어지게 만들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이것만이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요.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겁니다.

오늘 우리를 살리는 것은 많은 돈이 아닙니다. 넓은 집도 아닙니다.
하나님, 그리고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돈이 많아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셔야 합니다.
학벌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사십시오.
재주가 많아도 없는 것처럼 여기십시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는 것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광과 존귀가 어떤 것인지 말씀으로 되찾을 수만 있다면 철 병거보다 더 강력한 힘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그런 은혜가 임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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