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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금요일 목장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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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새새
댓글 0건 조회 577회 작성일 23-06-06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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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목장나눔입니다.
한 주간도 주인에서 승리하십시오.


왜 영적 전투에서 실패하는가? 본문 – 사시기 2장 1 -10절

사사기의 역사는 이스라엘이 맞은 최대의 비극적인 역사였습니다. 비극이 아닐 수 있었는데 그것을 비극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더 큰 비극이었습니다.
승리의 모든 여건을 소유하고도 패배의 잔을 맛보아야 했던 슬픈 역사의 막을 열면서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겁니다.

먼저 1,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여러분,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실패하게 된 이유가 뭔가?
그러니까 근본적인 실패 원인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실패 원인이며 모습이기도 합니다.

1절, 2절 말씀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군사적 이유나 전략적 실수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가나안 사람들의 철병거 때문도 아니요. 이스라엘 군대가 약해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들 때문이 아니고 신앙적인 이유 때문에 실패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아니한 신앙적 문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전투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우리의 힘이 약하거나 환경이 어렵다거나 넘기 힘든 장애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적 타락과 불순종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3절에 잘 나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이것은 무서운 저주입니다. 이 저주를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축복의 약속이 저주로 바뀐 것입니다.
순종했더라면 축복이 임했을 것인데 불순종했기에 저주가 된 겁니다.

참 아쉬운 것은 이것입니다.
순종만 했더라면 축복이 될 수 있었던 것을 불순종 때문에 흑암의 시대를 맞게 된 것입니다.
너무나 큰 비극이었습니다. 이제 4, 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 지라 그러므로 그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렇게 소리를 높여 울었을까요?
옛날의 그 열정과 순수함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다시 한번 불같이 일어나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열정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이 무거운 납덩이처럼 그들의 마음을 눌렀던 거지요.

 

1절 이하의 말씀을 잘 보시면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동기가 나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자가 오셔서 그 옛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즉 그때 은혜받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받치겠다고 결단하게 만들었던 그 메시지를 듣고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겁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들으며 과거의 순수했던 모습과 지금의 침체 된 모습을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마구 소리 지르며 울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울었던지 후손들은 그곳의 이름을 우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보김이라 불렀습니다.

이것을 볼 때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까지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사자의 말씀을 듣고 울었다고 해서 그 옛날의 신앙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먼 길을 와 버렸습니다. 이미 세상에 때가 너무 많이 묻어 버렸습니다.
식구들도 많이 늘었고 가나안 사람들과도 너무 친해져 버렸습니다.
한번 울었다 해서 예전 신앙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한 번 운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울어야 합니다.
겉으로 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으로 계속 울어야 합니다.
주시는 말씀 앞에 계속 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변화로 가는 길입니다.

11절 이하를 보면 그들은 곧 바알 귀신과 아스다롯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삽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앞에서 보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며 예배한 것이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는 거지요.
계속 이어졌다면 이렇게 바알과 아스다룻을 섬기지 않았을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한 번의 회개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한 번의 회개 중요하지요.
그러나 회개가 한 번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감상적 회개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배드릴 때마다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고 있습니까?
그 말씀에 찔림을 받으며 그 말씀에 반응하며 나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예배? 한번 돌아보십시오. 성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형식과 의식만 남은 예배입니까?
 
찬송할 때 보면 인도자는 힘을 다해 찬송하는데 그 시간에 기도하는 분들도 있고 주보를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니 여러분, 바로 알고 신앙 생활하셔야 합니다. 찬송하는 시간도 찬송으로 다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입니다.

찬송하는 시간은 말씀을 듣는 시간보다 못한 시간입니까? 그렇지 않아요.
찬송할 때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임을 알고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찬송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 장로님이 기도하는 시간에도 보면 고개를 숙이고 엎드리는 분들도 분들도 있습니다.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장로님이 기도하는 시간? 장로님만이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를 대표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잖아요.

그럼 장로님들이 기도하실 때 하나님, 그렇게 되기를 진정으로 원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아멘, 아멘 하며 함께 기도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정말 내가 기도하는 것처럼 그렇게 한 마음이 되어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예배, 찬송, 기도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참된 예배, 참된 기도, 참된 찬양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6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특히 10절을 보세요.

그 세대의 사람도 다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기 두 단어를 잘 보셔야 합니다. 상 반절에 그 세대는 구세대 여호수아 시대를 말합니다.
뒤에 나오는 다른 세대는 구세대인 여호수아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신세대인 사사기 시대를 말합니다.

이 사사시대에 일어난 큰 변화가 무엇이라 합니까?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그러니까 여호수아 시대에 있었던 하나님이 함께 하신 역사들을 신세대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단순히 과거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런 세대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겁니다.
배교와 타락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거지요.

우리 다음 세대는 괜찮습니까?

여기 사사시대가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 다음 세대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한 세대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전쟁과 가난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한 구세대와는 달리 우리 신세대는 처음부터 평안함과 풍요로움의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난을 정복하고 복음의 황무지였던 이 땅에서 피워낸 하나님의 복음의 만개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여기 사사시대가 처한 위험처럼 배교와 타락의 위험성이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곧 신세대에 대한 구세대의 책임으로 이어집니다.

새로운 세대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그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그들을 바로 지도할 책임이 우리 구세대에 있다는 겁니다.

끝으로 1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죄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지만 하나님 앞에 슬피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징계를 거두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죄는 징계를 초래하지만 기도는 하나님의 자비를 불러옵니다.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그런 은혜가 여러분에게 여러분 가정에 자녀들에게 꼭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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