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목장 나눔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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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도 목장님들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교회란 무엇인가?)4) 우리는 하나님의 소생입니다!
본문 - 사도행전 : 17 : 16 - 31절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복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저는 가족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제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 말씀을 준비하기 전에 기도하면서 든 생각이 사랑이었습니다. 감사였습니다.
그리고 가족의 따뜻함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가족입니다.
우리의 가족이 인물이 잘나서 돈을 많이 벌어 주어서 우리에게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성질머리가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약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면 새로운 힘이 나고 한번 살아 볼만한 인생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혈연의 관계 속에서 가족을 주십니다만
그러나 그보다도 더 큰 축복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생긴 영적인 가족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옆에 앉아 계시는 분들입니다.
여러분, 이런 영적 가족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육신의 가족만으로 우리 인생을 잘 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육신의 가족을 통해서도 오지만은 영적인 가족? 옆에 있는 성도들을 통해서도 오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덴에 들어갔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가 아덴에 들어가서 전했던 말씀을 보면 28절 하 반절입니다.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절 상 반절에도 보면 이와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이 말씀이 계속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난 한 자녀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가족이라는 게 뭡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우는?
이게 가족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런 영적인 가족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삶을 업그레이드 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더 복된 자리로 인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런 영적인 가족이 있습니까?
자기 마음속에 있는 아픔을 내어놓을 수 있고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같은 마음으로 같이 울면서 기도할 수 있는 그런 가족들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우리가 이런 영적 가족을 얻어야 합니다.
이런 가족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자리가 목장이라는 것입니다.
소그룹이라는 겁니다. 함께 말씀을 공부하는 자리라는 겁니다.
여러분,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 얼마나 외로운지 아시지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족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삶을 사는지 아실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다가 기독교 잡지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어떤 글인가 하면 자기 교회의 한 사랑방을 그러니까 우리로 하면 한 목장을 섬기면서 경험한 것을 글로 적은 것이었습니다.
그 글 중에 저의 마음에 강하게 감동을 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기 사랑방에 새로 젊은 부인이 한 분 들어오셨는데 신앙도 어리고 아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이었습니다.
이분이 교회도 잘 나오고 사랑방 모임도 잘 나오다가 무슨 일인지 오지를 않는 겁니다. 전화를 하면 받지도 않는 것입니다.
자기 전화는 안 받으니까 아들 핸드폰으로 하면 모르는 전화번호이니까 받았는데 접니다! 하면서 애기를 시작하면 그냥 전화를 끊어 버리는 겁니다.
한 두달 동안, 그렇게 계속 숨박꼭질을 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이분이 포기하지를 않았습니다.
이분이 일하시는 분이었는데 저녁 6시에 퇴근하는 것을 알고 자가 차로 운전해서 6시가 좀 덜 되어서 그분의 집 앞에 가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때가 2월 달이니까 좀 추운 때였다고 합니다.
단독 주택인데 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8시가 되어도 사람이 퇴근을 안 하더라는 것입니다.
근데 이분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화장실을 가고 싶은 겁니다.
화장실을 가려 하면 어느 상가 같은 데를 찾아가서 일을 보고 와야 하는데 가려고 하니까 그사이에 이 사람이 와서 집에 속 들어가 버리면 어떻게 하나?
벨을 눌려도 아이고 나 안 만나렵니다! 그러고 문을 안 열어주면 2시간 고생한 게 다 허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변을 참고 기다리는데 소변이 참아 줍니까? 견딜 수가 없게 된 겁니다.
이걸 어떻게 하나? 하고 발을 동등 구르다가 자기 차 이곳저곳을 뒤져보니 비닐봉지가 하나 있더랍니다.
이분이 나이가 40대 중반이 된 점잖은 분입니다. 교양도 있는 분입니다.
근데 세상에 이분이 거기서 급히 볼일을 봤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고 문 앞에 서서 기다리다가 결국 그분을 만나 자기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작은 사랑의 선물을 전해서 결국 그분이 사랑방 모임에 나오게 되고 교회를 다시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 철없던 사랑방 식구가 자기도 집사님과 같은 사랑방 리더가 되겠다고 고백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는 글이었습니다.
참 놀라운 애기 였습니다.
여러분, 영적 가족 관계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그룹 모임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 사랑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도하면서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면서 영적 가족 관계가 형성되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은혜를 꼭 경험하는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분의 목장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이 아덴에 들어갔을 때 16절에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격분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아덴은 바울이 오기 400년 전부터 찬란한 문명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이 사람들을 가르쳤고 뛰어난 조각가, 미술가들이 그렇게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 아덴에 가도 별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옛날 흔적들은 있다고 합니다.
하여간에 바울이 그 아덴의 작품들을 보면서 철학의 논리들을 보면서 격분했습니다.
왜요? 아무리 아름다운 조각품이 있고 미술품이 있어도 그것들이 사람들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뭐 에피큐로스 학파니 스토아학파니 하는 철학자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지 않습니까? 에피큐로스는 쾌락을 최고의 미라고 생각하는 요즘 현대인들하고 비슷한 인물입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쾌락이 있어야지! 그것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는가?
그게 에피큐로스 학파입니다.
스토아학파는 종류가 좀 다릅니다. 유교의 군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덕을 쌓는 것이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다!
조금 종류가 다른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바울이 만나 토론하기도 하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그들의 조각과 글들을 보면서 분함을 느꼈던 너무 안타까워서 분노했던 이 마음을 우리가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살면서 여기, 저기 좋은 곳에 많이 가 보셨지요.
얼마나 좋은 건물들이 많습니까? 화려한 치장을 해 놓은 이제는 해외 나가 보아도 웬만한 백화점은 대구 신세계보다 못합니다.
아파트도 얼마나 잘 짓는지?
여러분, 그러한 건사한 건물들을 볼 때 무얼 느끼십니까?
참 좋다! 근데 나는 언제 이런 데서 한 번 살아보나!
그런 곳에 못 살아서 분합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것에 분하면 안 됩니다.
왜요? 정말 아름답고 근사한 천국이 우리에게 예비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그런 곳에 못 살아 봐도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온갖 좋은 것들이 다 있는데 여기엔 참 생명이 없구나!
왜 이런데 사는 데도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사는가!
그걸 생각할 때 우리 마음에 거룩한 안타까움이 있어야 하고 거룩한 분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변화의 기적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아덴에 들어가서 교회를 세웠지 않습니까?
근데 그가 이 아덴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빌립보, 데살로니가를 쭉 돌면서 그가 세웠던 것이 가정 교회였던 것을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이 큰 교회를 세우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가정 교회를 세웠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예배드리는 그런 가정 교회를 많이 세웠습니다.
그때 교회들은 큰 건물도 없고 화려한 악기들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시설이 엉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가 문제가 생겼을 때
아파하면서 함께 기도하는 그리고 그런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는 기적을 그들이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그런 은혜를 경험하지 않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교회를 통해 소그룹을 통해 이런 은혜를 더 크게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18절 하 반절에 보면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1절에 보면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은 우리에게 믿음의 증거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증거입니까?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영원히 죽을 자가 영원한 생명으로 바뀐다는 것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 이유이고요. 우리 목장의 영광입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 목장이 이런 모습으로 나아갈 때 우리가 주안에서 한 가족 됨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될 겁니다.
영혼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기적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이 2025년도 더 크게 여러분 모두가 경험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교회란 무엇인가?)4) 우리는 하나님의 소생입니다!
본문 - 사도행전 : 17 : 16 - 31절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복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저는 가족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제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 말씀을 준비하기 전에 기도하면서 든 생각이 사랑이었습니다. 감사였습니다.
그리고 가족의 따뜻함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가족입니다.
우리의 가족이 인물이 잘나서 돈을 많이 벌어 주어서 우리에게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성질머리가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약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면 새로운 힘이 나고 한번 살아 볼만한 인생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혈연의 관계 속에서 가족을 주십니다만
그러나 그보다도 더 큰 축복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생긴 영적인 가족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옆에 앉아 계시는 분들입니다.
여러분, 이런 영적 가족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육신의 가족만으로 우리 인생을 잘 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육신의 가족을 통해서도 오지만은 영적인 가족? 옆에 있는 성도들을 통해서도 오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덴에 들어갔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가 아덴에 들어가서 전했던 말씀을 보면 28절 하 반절입니다.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절 상 반절에도 보면 이와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이 말씀이 계속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난 한 자녀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가족이라는 게 뭡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우는?
이게 가족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런 영적인 가족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삶을 업그레이드 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더 복된 자리로 인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런 영적인 가족이 있습니까?
자기 마음속에 있는 아픔을 내어놓을 수 있고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같은 마음으로 같이 울면서 기도할 수 있는 그런 가족들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우리가 이런 영적 가족을 얻어야 합니다.
이런 가족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자리가 목장이라는 것입니다.
소그룹이라는 겁니다. 함께 말씀을 공부하는 자리라는 겁니다.
여러분,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 얼마나 외로운지 아시지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족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삶을 사는지 아실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다가 기독교 잡지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어떤 글인가 하면 자기 교회의 한 사랑방을 그러니까 우리로 하면 한 목장을 섬기면서 경험한 것을 글로 적은 것이었습니다.
그 글 중에 저의 마음에 강하게 감동을 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기 사랑방에 새로 젊은 부인이 한 분 들어오셨는데 신앙도 어리고 아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이었습니다.
이분이 교회도 잘 나오고 사랑방 모임도 잘 나오다가 무슨 일인지 오지를 않는 겁니다. 전화를 하면 받지도 않는 것입니다.
자기 전화는 안 받으니까 아들 핸드폰으로 하면 모르는 전화번호이니까 받았는데 접니다! 하면서 애기를 시작하면 그냥 전화를 끊어 버리는 겁니다.
한 두달 동안, 그렇게 계속 숨박꼭질을 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이분이 포기하지를 않았습니다.
이분이 일하시는 분이었는데 저녁 6시에 퇴근하는 것을 알고 자가 차로 운전해서 6시가 좀 덜 되어서 그분의 집 앞에 가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때가 2월 달이니까 좀 추운 때였다고 합니다.
단독 주택인데 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8시가 되어도 사람이 퇴근을 안 하더라는 것입니다.
근데 이분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화장실을 가고 싶은 겁니다.
화장실을 가려 하면 어느 상가 같은 데를 찾아가서 일을 보고 와야 하는데 가려고 하니까 그사이에 이 사람이 와서 집에 속 들어가 버리면 어떻게 하나?
벨을 눌려도 아이고 나 안 만나렵니다! 그러고 문을 안 열어주면 2시간 고생한 게 다 허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변을 참고 기다리는데 소변이 참아 줍니까? 견딜 수가 없게 된 겁니다.
이걸 어떻게 하나? 하고 발을 동등 구르다가 자기 차 이곳저곳을 뒤져보니 비닐봉지가 하나 있더랍니다.
이분이 나이가 40대 중반이 된 점잖은 분입니다. 교양도 있는 분입니다.
근데 세상에 이분이 거기서 급히 볼일을 봤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고 문 앞에 서서 기다리다가 결국 그분을 만나 자기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작은 사랑의 선물을 전해서 결국 그분이 사랑방 모임에 나오게 되고 교회를 다시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 철없던 사랑방 식구가 자기도 집사님과 같은 사랑방 리더가 되겠다고 고백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는 글이었습니다.
참 놀라운 애기 였습니다.
여러분, 영적 가족 관계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그룹 모임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 사랑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도하면서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면서 영적 가족 관계가 형성되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은혜를 꼭 경험하는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분의 목장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이 아덴에 들어갔을 때 16절에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격분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아덴은 바울이 오기 400년 전부터 찬란한 문명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이 사람들을 가르쳤고 뛰어난 조각가, 미술가들이 그렇게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 아덴에 가도 별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옛날 흔적들은 있다고 합니다.
하여간에 바울이 그 아덴의 작품들을 보면서 철학의 논리들을 보면서 격분했습니다.
왜요? 아무리 아름다운 조각품이 있고 미술품이 있어도 그것들이 사람들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뭐 에피큐로스 학파니 스토아학파니 하는 철학자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지 않습니까? 에피큐로스는 쾌락을 최고의 미라고 생각하는 요즘 현대인들하고 비슷한 인물입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쾌락이 있어야지! 그것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는가?
그게 에피큐로스 학파입니다.
스토아학파는 종류가 좀 다릅니다. 유교의 군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덕을 쌓는 것이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다!
조금 종류가 다른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바울이 만나 토론하기도 하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그들의 조각과 글들을 보면서 분함을 느꼈던 너무 안타까워서 분노했던 이 마음을 우리가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살면서 여기, 저기 좋은 곳에 많이 가 보셨지요.
얼마나 좋은 건물들이 많습니까? 화려한 치장을 해 놓은 이제는 해외 나가 보아도 웬만한 백화점은 대구 신세계보다 못합니다.
아파트도 얼마나 잘 짓는지?
여러분, 그러한 건사한 건물들을 볼 때 무얼 느끼십니까?
참 좋다! 근데 나는 언제 이런 데서 한 번 살아보나!
그런 곳에 못 살아서 분합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것에 분하면 안 됩니다.
왜요? 정말 아름답고 근사한 천국이 우리에게 예비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그런 곳에 못 살아 봐도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온갖 좋은 것들이 다 있는데 여기엔 참 생명이 없구나!
왜 이런데 사는 데도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사는가!
그걸 생각할 때 우리 마음에 거룩한 안타까움이 있어야 하고 거룩한 분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변화의 기적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아덴에 들어가서 교회를 세웠지 않습니까?
근데 그가 이 아덴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빌립보, 데살로니가를 쭉 돌면서 그가 세웠던 것이 가정 교회였던 것을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이 큰 교회를 세우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가정 교회를 세웠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예배드리는 그런 가정 교회를 많이 세웠습니다.
그때 교회들은 큰 건물도 없고 화려한 악기들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시설이 엉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가 문제가 생겼을 때
아파하면서 함께 기도하는 그리고 그런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는 기적을 그들이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그런 은혜를 경험하지 않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교회를 통해 소그룹을 통해 이런 은혜를 더 크게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18절 하 반절에 보면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1절에 보면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은 우리에게 믿음의 증거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증거입니까?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영원히 죽을 자가 영원한 생명으로 바뀐다는 것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 이유이고요. 우리 목장의 영광입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 목장이 이런 모습으로 나아갈 때 우리가 주안에서 한 가족 됨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될 겁니다.
영혼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기적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이 2025년도 더 크게 여러분 모두가 경험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 다음글목장 나눔(3월 21일) 2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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