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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4일 목장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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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새새
댓글 0건 조회 93회 작성일 24-09-28 09:47

본문

새로운 10월달입니다.
한달도 주안에서 승리하세요.
목자님들의 섬김을 축복합니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라!
본문 – 왕 상 18장 30 - 40절
 

여러분은 연어를 좋아하십니까?
우리나라로 오는 연어들은 북태평양에서 서식하다가 가을이 되면 약 75%가 강원도 양양의 남대천을 통해 들어온다고 합니다.

연어는 강과 바다를 넘나드는 몇 안 되는 어종 중 하나입니다.
강에서 태어나 드넓은 바다에서 약 4, 5년 자라다가 성어가 되면 진주 같은 연분홍의 알을 낳기 위해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회귀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 독특한 생선입니다.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회귀 본능은 신비할 정도로 정확합니다.

 

저는 이 연어에게서 신앙의 핵심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비결이 뭔가? 바로 회귀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되돌아가는 겁니다.
어떤 경험속에서도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회귀 작업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을 만나도 아니 아무리 멋진 순간을 경험해도 그 경험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참 신앙인입니다.

이 회귀 작업이 잘 되는 사람일수록 신앙의 멋진 인생을 삽니다.

자, 이제 오늘 본문을 쭉 보십시오. 바로 앞에서 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회귀? 즉 돌아가게 하고자 몸부림치는 엘리야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엘리야가 하늘의 불을 내리기 전에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하늘에서 불덩이를 내려주시기 전에 엘리야가 취했던 행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너진 제단을 다시 복구한 것입니다. 30절이지요.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여러분, 여기 하 반절에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이라는 말에 주목해 보세요.

그 제단은 원래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나던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영광 중에 임재하시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깊이 교제를 나누는 그런 은혜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 현장이 바로 하나님의 제단이었던 것입니다.

 

근데 그곳이 어느새 무너져 있었다는 겁니다.

바알 우상 때문에 파괴됐습니다. 아니 바알 우상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들어앉아 있었던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엘리야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제단을 복구하는 거였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이 말씀이 조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우리?

늘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을 만나는 영광의 교제를 누리는 지성소를 잃은 것은 아닌가?

혹은 그 자리를 어떤 다른 것이 차지해서 다시 그 자리를 복구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을 만나야 할 바로 내 내면의 세계가 하나님과 항상 교제를 누리고 영광의 임재를 체험해야 할 내 심령의 세계가 혹시 무너져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무너지기 쉬운 내면세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무너져도 무너졌는지도 모르고 살아갈 때가 참 많습니다.

 

왜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그 하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체험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

 

하나님과 내가 만나야 되는 바로 그 성소가 무너져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을 보면 주님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책망하십니다.

무엇 때문에 책망하십니까? 계시록 2장 4절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이 에베소 교회는 한때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교회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서 어떤 다른 교회와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열정적이고 불타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순교할 수 있었고 목숨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주님을 위해 드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그 사랑이 식고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그들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지적하셨던 겁니다.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하나 있나니 너가 처음 사랑을 버렸노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무너진 내면세계를 복구하라는 겁니다.

파괴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겉모습만 보고 여러분을 진단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주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지고 교제가 이루어져야 할 그 자리에 들어서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아보십시오.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먼저 그 작업부터 한 것입니다.

오늘 무너진 제단을 회복하는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자, 이렇게 무너진 제단을 재건한 뒤 엘리야가 드린 기도에 하나님이 반응하시지요.

번제물은 다 불탔고요. 흥건하던 제단 주위에 물도 완전히 말랐습니다.

 

큰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던 바알 선지자들의 제사와는 전혀 다르게 엘리야의 제사에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38절이지요.

하늘에서 불이 내린 것입니다. 그 일을 본 백성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39절입니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여기 상 반절 말씀을 주의해서 보십시오.

모든 백성이 뭐하고요? 보고? 그다음에 엎드려 말하되!

 

먼저 모든 백성들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목격하고 확인했다는 말입니다.

 

사실 신앙인은 목격자입니다. 남이 못 보는 것을 보는 목격자입니다.

남이 듣지 못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인생입니다.

남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몸으로 체험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 일서 1장 1, 2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 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신앙인은 목격자입니다.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조차도 믿음으로 꿰뚫어 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목격자가 되어야 흔들림 없는 믿음 생활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육신의 눈으로 확인할 뿐만 아니라 영적인 눈으로 모든 것을 보는 목격자가 되어야 그 신앙이 전진합니다.

이런 목격자의 신앙으로 변하는 은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불행한 사건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보는 목격자 인생이 되어 보십시오.

신앙의 인생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삶의 엄청난 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겁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보고 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집니까?



모든 백성이 보고 그다음 단어를 보십시오. 엎드려?



그렇습니다. 신앙의 목격자가 되면 엎드립니다. 겸손해집니다. 왜 신앙의 경험이 필요합니까?

그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에 엎드리는 겸손함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언제 자식들이 철이 듭니까?

자기가 직접 자식을 낳아 길러 보아야 철이 듭니다.

그러고 나면 부모님을 다시 보게 됩니다.

경험해 보고 나서야 부모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합니다.

 

그전에는 설익은 어설픈 지식으로 부모에게 대듭니다.

주워 들은 토막 지식으로 부모를 몰아세웁니다.

그러나 철이 들면 변합니다.

 

그래서 목격자가 되는 인생이 중요한 것입니다.

목격자가 되면 엎드릴 줄 알기 때문입니다. 겸손해지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좋은 경험을 해 보는 목격자가 되어 봐야 신앙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해서 함부로 입을 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말 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엎드리는 것을 배우는 사람이 더 멋집니다.

먼저 엎드릴 줄 안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먼진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남은 삶이 그런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끝으로 39절 다시 보십시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그다음?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참 귀한 신앙 고백입니다.

여러분, 여기 여호와가 무슨 뜻입니까?

출애굽기 3장 14절에 의하면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 I am who I am!

 

여호와 하나님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에 의존한다면 진짜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다른 것에 종속되거나 의존하지 않는 여호와 그가 진짜 하나님이십니다.

 

신앙은 이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신앙 고백입니다.

 

돈도 고백했다가 권력도 고백했다가 명예도 고백했다가 하는 것은 신앙 고백이 아닙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여호와라는 말의 또 다른 뜻은 여호와인 나는 있고 싶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있을 수 있는 자입니다.

그래서 미래에도 아니 영원히 있을 수 있는 자입니다.

 

신앙 고백이라는 것은 미래에도 그분이 나의 유일한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미래에도 여전히 우리 하나님은 바로 여호와 그분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유효기간이 지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도 그렇지만 미래도 당연히 그분일 수밖에 없는 분, 그분이 바로 진짜 하나님입니다.

 

이분을 고백해야 합니다.

바뀔 수 있는 것을 신으로 믿고 살지 마십시오.

 

멕시코의 경제가 흔들릴 때 하루아침에 페소화의 가치가 백배, 천배로 하락해 버렸습니다.
갑자기 쓸모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 것은 우리의 신앙,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두 번이나 고백하는 겁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이 철저하고 분명한 자기 고백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한 번으로 모자라면 두 번 아니 세 번, 네 번 자신에게 이 복음을 전하십시오.

 

내 마음에 확실히 새겨질 때까지 이 여호와 복음을 전하고 전하십시오.

 

스스로 계신 분? 우리의 미래의 주관자가 되신 분?

우리 인생의 유일한 해답을 갖고 계신 분?

 

우리 자녀들 마음 판에도 새겨질 때까지 전해 주십시오. 철저한 이 신앙 고백 위에 우리 자녀가 서도록 계속 이 여호와 복음을 전하십시오.

 

이 철저한 여호와 복음의 신앙으로 여러분의 미래를 힘 있게 열어가기를 축원합니다.

 

 

찬양 -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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