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금요일 목장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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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24년 전반기 목장 모임이 시작됩니다.
목자들의 수고와 섬김에 기도로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갈라디아서 강해(2) 우리에게 확실한 약속이 있습니다!
본문 – 갈라디아서 3장 15 - 29절
간혹 보면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행함으로 구원을 받고 신약에서는 믿음으로 구원받으며
말세에는 성령으로 구원받는다!
그러니까 시대마다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다르다는 겁니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는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이 말?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진리는 시대에 따라 다르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하는 사도 바울의 이 철저한 구원론은
사실상 창세기부터 있어 온 거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있었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대립시켜 생각하거나 혹은 양자택일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교리적으로 반드시 정리가 되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가 살피는 이 갈라디아서는 다른 성경에 비해 내용이 좀 어렵습니다.
때문에 갈라디아서를 바로 이해하고 나면 다시는 신앙이 흔들릴 염려가 없을 겁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즉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과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말씀은 결코 두 사건이 아닙니다.
근데 갈라디아 사람들 즉 율법주의자들은 이를 대립시켜 양자택일로 이해하려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신학 이론이나 성경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것입니다. 이어 율법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해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말입니다. 율법도 어떻게 이해 되어져야 한다고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왜 그런가? 율법은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먼저이지만 이 은혜를 바로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율법이라는 부정적인 수단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율법이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를 은혜에로 인도하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간접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은혜의 문제를 따로 떼어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직선적이며 조화있게 이해해야 합니다.
은혜 중심으로 율법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시면 이 말씀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 워드가 있습니다.
그게 뭔 것 같습니까? 약속이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여기서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려고 애쓰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보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도
미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가 없으면 그 모든 수고들이 헛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사를 드린다고 합시다. 아무리 푸짐하게 바치면 무얼 합니까?
하나님께서 먼저 제사를 드리라 하고 말씀하신 다음에 드려야 효력이 있는 것이지요.
레위기를 보십시오. 죄를 용서 받는 방법들이 나오잖아요.
이런 죄를 지었을 때 이렇게 하고 저런 죄를 지었을 때 저렇게 해라!
근데 그냔 내 마음대로 제사한다!
그럼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지요.
내 멋대로 수만 마리의 양을 잡아 드린다고 해서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 없이 내 편에서 아무리 발버둥 친들 이루어질 것이 없습니다.
구원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길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는 길로 약속을 주셔야 합니다.
그 약속이 바로 예수를 통한 구원입니다.
창세기 3장부터 나오는 약속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나오는 예수를 통한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따라가면 구원의 길이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400년 뒤에 율법이 나왔지요.
그러므로 근본적인 것은 예수를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거기에 있기에 이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약속은 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율법이 나왔다고 해서 이제와서 폐하든가 더하든가 이전 방법을 고치든가 변덕스럽게 다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폐기하지도 제거하지도 수정하지도 감할 수도 없습니다.
그로므로 율법과 은혜를 대립시켜 이해하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자 이제 16절을 보십시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이 말씀에 의하면 이 약속들은 누구에게 하신 것이라 합니까?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려 한 것이라!
창세기 12장, 17장으로 가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시는데 그 약속이 어떻습니까? 일방적입니다.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게 너에게 아들을 줄 것이다! 고향을 떠나라!
내가 너를 복덩어리로 만들어 줄 것이다!
온 백성이 나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일방적인 약속을 믿고 고향과 친척을 떠납니다.
믿고 떠나니까 하나님께서 그 약속들을 유효하게 이루어 가십니다.
오직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요 선택적으로 주어지는 약속이었습니다.
이 약속은 불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은 정말 불변합니다. 그리고 믿음직합니다.
한 반 약속하신 다음에는 하나님 편에서 계속 이루어 가십니다.
사람이 휘청거리지 하나님께서는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몇 번 휘청거립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
왜 휘청거리냐고 깨우쳐 주십니다.
나는 엘 사다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그런 분이니 나의 약속을 믿고 흔들리지 마라!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미덥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불변하고 강권 적이며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십자가로 하나님의 이 언약에 사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이 약속은 확증되고 효력을 냅니다.
그를 붙드는 자에게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모두 다 내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이를 믿고 받아들여 실천하게 되면 그 약속이 내 생활 속에 이루어집니다.
어떤 목사님이 한 실실한 성도님 가정을 심방하여 같이 예배를 드립니다.
근데 그 성도의 성경책을 보니 빨간색으로 영어의 T자와 P자가 적힌 것을 본 겁니다.
궁금해진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T자는 무엇이고 P자는 무엇입니까?
T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제가 그대로 시행해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Try라는 T자를 썼습니다. 그대로 행할 때 되나 안되나?
P자는 증명하다는 뜻을 가진 Proved의 머릿 글자 P입니다.
그대로 해 보았더니 그대로 이루어지더라!
그 말씀 그대로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해 보지도 않고 된다 안 된다 비평부터 합니다.
안 될 리가 없습니다. 해 보십시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
말라기를 보십시오,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라!
모든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옴을 인정하고 십의 일조를 드려라!
한번 그렇게 해 보십시오,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시나 안 주시나 한번 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한 약속을 하나도 어기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믿고 그렇게 사는 여러분들 다 되길 축원합니다.
끝으로 29절 보십시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참으로 엄청난 말씀입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즉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옆에 분과 서로 이런 말로 권면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유업을 이를 자입니다!
제가 유학 가서 공부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엄청난 부자 부모 만나 공부하는 줄 알고요.
모두들 한국에서 굉장한 유명한 부자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그것은 제 마음속 하나님 아버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버지 성함을 끝까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몇천 억의 유산을 받을 때 우리가 얼마나 기대가 됩니까?
10년 후에 내가 우리 아버지의 재산 6천억을 다 받는다고 하면 잠이 오겠습니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지금의 고난을 못 견디겠습니까?
오늘 성경이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약속의 놀라운 축복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 아버지에게 속한 모든 것을 우리가 상속받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는다는 겁니다.
그분의 영원한 생명? 그분의 놀라운 영광? 그분의 지위?
천국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이 바로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힘든 환경에서도 오늘 주시는 이 말씀이 여러분 모두에게 소망의 말씀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내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아래 무 조건적으로? 변치 않는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았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천국의 모든 것을 누릴 날이 올 겁니다.
그날 바라보며 오늘을 더욱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측원합니다.
목자들의 수고와 섬김에 기도로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갈라디아서 강해(2) 우리에게 확실한 약속이 있습니다!
본문 – 갈라디아서 3장 15 - 29절
간혹 보면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행함으로 구원을 받고 신약에서는 믿음으로 구원받으며
말세에는 성령으로 구원받는다!
그러니까 시대마다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다르다는 겁니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는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이 말?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진리는 시대에 따라 다르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하는 사도 바울의 이 철저한 구원론은
사실상 창세기부터 있어 온 거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있었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대립시켜 생각하거나 혹은 양자택일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교리적으로 반드시 정리가 되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가 살피는 이 갈라디아서는 다른 성경에 비해 내용이 좀 어렵습니다.
때문에 갈라디아서를 바로 이해하고 나면 다시는 신앙이 흔들릴 염려가 없을 겁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즉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과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말씀은 결코 두 사건이 아닙니다.
근데 갈라디아 사람들 즉 율법주의자들은 이를 대립시켜 양자택일로 이해하려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신학 이론이나 성경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것입니다. 이어 율법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해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말입니다. 율법도 어떻게 이해 되어져야 한다고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왜 그런가? 율법은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먼저이지만 이 은혜를 바로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율법이라는 부정적인 수단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율법이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를 은혜에로 인도하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간접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은혜의 문제를 따로 떼어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직선적이며 조화있게 이해해야 합니다.
은혜 중심으로 율법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시면 이 말씀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 워드가 있습니다.
그게 뭔 것 같습니까? 약속이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여기서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려고 애쓰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보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도
미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가 없으면 그 모든 수고들이 헛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사를 드린다고 합시다. 아무리 푸짐하게 바치면 무얼 합니까?
하나님께서 먼저 제사를 드리라 하고 말씀하신 다음에 드려야 효력이 있는 것이지요.
레위기를 보십시오. 죄를 용서 받는 방법들이 나오잖아요.
이런 죄를 지었을 때 이렇게 하고 저런 죄를 지었을 때 저렇게 해라!
근데 그냔 내 마음대로 제사한다!
그럼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지요.
내 멋대로 수만 마리의 양을 잡아 드린다고 해서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 없이 내 편에서 아무리 발버둥 친들 이루어질 것이 없습니다.
구원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길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는 길로 약속을 주셔야 합니다.
그 약속이 바로 예수를 통한 구원입니다.
창세기 3장부터 나오는 약속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나오는 예수를 통한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따라가면 구원의 길이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400년 뒤에 율법이 나왔지요.
그러므로 근본적인 것은 예수를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거기에 있기에 이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약속은 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율법이 나왔다고 해서 이제와서 폐하든가 더하든가 이전 방법을 고치든가 변덕스럽게 다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폐기하지도 제거하지도 수정하지도 감할 수도 없습니다.
그로므로 율법과 은혜를 대립시켜 이해하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자 이제 16절을 보십시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이 말씀에 의하면 이 약속들은 누구에게 하신 것이라 합니까?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려 한 것이라!
창세기 12장, 17장으로 가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시는데 그 약속이 어떻습니까? 일방적입니다.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게 너에게 아들을 줄 것이다! 고향을 떠나라!
내가 너를 복덩어리로 만들어 줄 것이다!
온 백성이 나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일방적인 약속을 믿고 고향과 친척을 떠납니다.
믿고 떠나니까 하나님께서 그 약속들을 유효하게 이루어 가십니다.
오직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요 선택적으로 주어지는 약속이었습니다.
이 약속은 불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은 정말 불변합니다. 그리고 믿음직합니다.
한 반 약속하신 다음에는 하나님 편에서 계속 이루어 가십니다.
사람이 휘청거리지 하나님께서는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몇 번 휘청거립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
왜 휘청거리냐고 깨우쳐 주십니다.
나는 엘 사다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그런 분이니 나의 약속을 믿고 흔들리지 마라!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미덥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불변하고 강권 적이며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십자가로 하나님의 이 언약에 사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이 약속은 확증되고 효력을 냅니다.
그를 붙드는 자에게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모두 다 내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이를 믿고 받아들여 실천하게 되면 그 약속이 내 생활 속에 이루어집니다.
어떤 목사님이 한 실실한 성도님 가정을 심방하여 같이 예배를 드립니다.
근데 그 성도의 성경책을 보니 빨간색으로 영어의 T자와 P자가 적힌 것을 본 겁니다.
궁금해진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T자는 무엇이고 P자는 무엇입니까?
T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제가 그대로 시행해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Try라는 T자를 썼습니다. 그대로 행할 때 되나 안되나?
P자는 증명하다는 뜻을 가진 Proved의 머릿 글자 P입니다.
그대로 해 보았더니 그대로 이루어지더라!
그 말씀 그대로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해 보지도 않고 된다 안 된다 비평부터 합니다.
안 될 리가 없습니다. 해 보십시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
말라기를 보십시오,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라!
모든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옴을 인정하고 십의 일조를 드려라!
한번 그렇게 해 보십시오,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시나 안 주시나 한번 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한 약속을 하나도 어기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믿고 그렇게 사는 여러분들 다 되길 축원합니다.
끝으로 29절 보십시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참으로 엄청난 말씀입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즉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옆에 분과 서로 이런 말로 권면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유업을 이를 자입니다!
제가 유학 가서 공부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엄청난 부자 부모 만나 공부하는 줄 알고요.
모두들 한국에서 굉장한 유명한 부자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그것은 제 마음속 하나님 아버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버지 성함을 끝까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몇천 억의 유산을 받을 때 우리가 얼마나 기대가 됩니까?
10년 후에 내가 우리 아버지의 재산 6천억을 다 받는다고 하면 잠이 오겠습니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지금의 고난을 못 견디겠습니까?
오늘 성경이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약속의 놀라운 축복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 아버지에게 속한 모든 것을 우리가 상속받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는다는 겁니다.
그분의 영원한 생명? 그분의 놀라운 영광? 그분의 지위?
천국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이 바로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힘든 환경에서도 오늘 주시는 이 말씀이 여러분 모두에게 소망의 말씀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내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아래 무 조건적으로? 변치 않는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았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천국의 모든 것을 누릴 날이 올 겁니다.
그날 바라보며 오늘을 더욱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측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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