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03일(첫째 주일) 목장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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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님들 수고 많습니다.
이제 12월 첫째 주일이 행복축제입니다.
목장에서 나오지 않는 분들, 또 태신자들 위해 모일때마다 기도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믿음으로 산 남자(5) 요셉!
본문 – 창세기 39장 1 –3, 히브리서 11장 22절
오늘 본문은 두 군데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요셉의 참모습을 살펴보려 합니다.
우리는 요셉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만 요셉의 인격을 본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과거에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복장이 터질 노릇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특별히 받던 요셉이 형님들의 질투와 시기 때문에 이렇게 비참해졌습니다.
노예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지난날을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노예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몸은 분명히 노예요, 확실한 노예였습니다만 노예 된 과거로부터 그 마음은 항상 자유 했습니다.
보세요. 그는 큰 미움을 받았습니다. 형들로부터요.
있을 수 없는 엄청난 과거지요. 이로 인해 억울하고 한이 맺힙니다.
그러나 한의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위대함이 있는 겁니다.
지난날의 잘못된 것?
그것을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해서 아무 일도 못합니다.
이것처럼 답답한 일이 없습니다.
과거의 잘못의 늪에서 자유 해야 하는데 그 누구를 원망하고 그 생각에 매여 있는 동안에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원한과 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과거로부터 온전히 자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미래가 문제입니다. 모든 문제는 소망의 문제입니다.
근데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전혀 소망이 없습니다.
노예는 노예입니다. 한평생 노예입니다.
노예로 죽을 것입니다. 참 비참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요셉, 그는 지금 노예입니다.
노예로 살다가 노예로 죽어갈 사람이었지만 그는 미래를 암담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신앙적 삶의 자세입니다.
또한 현재적으로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노예입니다. 근데 진실하고 신실한 노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신실합니다. 진실합니다.
제가 요셉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신실한 요셉을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창세기 39장에서 구절구절마다 강조되어 나타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2절 상 반절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3절을 같이 읽습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이 단어가 마지막 23절까지 계속 나옵니다.
이렇게 강조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 집에 복을 내리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요셉 때문에 하나님이 그 집에 복을 주시는 겁니다.
이것을 주인 보디발이 알아봅니다.
분명히 저 사람 요셉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집니다.
그래서 불과 17세의 소년이 그 집의 총무가 됩니다.
집안의 일을 다 맡아 하는 주인에게 신임받는 노예가 됩니다.
요셉은 신앙으로 모든 것을 극복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항상 자유 했습니다.
누가 하라 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신앙적 인격으로 주도적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주시지요.
창세기 45장 5절에 그의 유명한 신앙 간증이 나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요셉은 형들에게 팔렸다는 의식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 보내셨다는 의식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가 복된 삶을 사는 그리고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비결이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의식으로 사십니까?
과거에 매여 원망과 불평으로 사십니까?
승리는 주 안에서 자유 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은 요셉처럼 하나님 의식으로 살기를 축복합니다.
하나 더 생각할 것은 히브리서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아니 질문을 좀 바꾸어서 여러분이 생각하실 때 요셉은 과연 무엇으로 유명한 사람이라 생각하십니까?
억울하게 종으로 팔리고 감옥까지 갔으나 일약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파란만장한 삶에 기적적인 승리로 채워진 사람,
다른 사람이 해보지 못하고 올라보지 못한 자리에 섰던 사람,
그래서 우리의 대리 만족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까?
창세기에서 보면 요셉의 생애는 하나의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많은 설교자들이 히브리서에 나오는 요셉에 대한 구절을 읽고도 무조건 창세기로 가서 그의 일생에 본받을 만한 점들을 줄줄 꿰곤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그 설교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이 다라면 왜 하나님께서 히브리서의 말씀을 기록으로 남겼겠습니까?
창세기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러므로 우리는 히브리 기자가 말하는 요셉의 애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22절 말씀 같이 한 번 더 읽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히브리서 기자는 요셉의 생애에 일어났던 그 많은 드라마틱한 사건들?
그런 것들을 다 제쳐두고 왜 임종 시에 그가 남긴 말만 기록하는가?
히브리서 기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옛날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과거에 고생했던 이야기?
그런 가운데 그것들을 다 이겨내고 승리한 애기? 하고 싶어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요셉이 고생했던 애기들을 하면서 믿음으로 요셉은 총리가 되어라고 말할만 하지 않습니까?
근데 오늘 히브리서 가지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딱 한 마디 말만 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요셉이 죽을 때 믿음으로 떠나라 했다는 이 말밖에 안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늘 말씀에 핵심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지한 질문 하나를 던져야 합니다.
요셉이 어떻게 믿음의 족장이 될 수 있었는가?
요셉이 왜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인가?
그가 왜 유명한 자인가? 그가 애 굽의 총리가 되었기 때문입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유명한 자입니까?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성경을 다시 읽으셔야 합니다.
그가 믿음의 족장이라는 반열에 설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
그것은 그가 총리가 되어서가 아니고요.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알았습니다. 아니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4대 만에 가나안으로 돌아가리라는 그 말씀을 알았습니다. 아니 확고히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이 무엇을 붙들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지요.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안목으로 볼 때 요셉이 총리가 되었건 무슨 역사를 일으켰던 거기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오직 그의 믿음의 혜안으로 볼 때 요셉이 임종 시에 그 조상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지 않았다면
요셉 또한 애굽의 자식에 불과하고 애굽의 한 지도자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기에 믿음으로 라는 단어가 요셉의 생애에 기록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사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나는 죽으나의 신앙입니다.
이삭은 죽을 때에 이브라함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야곱 역시 죽을 때 아브람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요셉은 임종시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은 너희를 책임지신다는 믿음의 약속을 붙들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이 약속의 하나님을 붙들고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을 붙들지 마십시오. 그러면 실패합니다.
돈이 필요하지만 돈을 붙들면 아무 의미 없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시편 146편 3절에서 5절입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나는 죽으나 언제나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
나는 약하나 강하신 하나님! 나는 무지하나 다 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 여러분의 소망을 두고 산다면?
그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여러분의 꿈으로 삼고 산다면?
오늘의 요셉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그런 삶을 사는 은혜가 꼭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12월 첫째 주일이 행복축제입니다.
목장에서 나오지 않는 분들, 또 태신자들 위해 모일때마다 기도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믿음으로 산 남자(5) 요셉!
본문 – 창세기 39장 1 –3, 히브리서 11장 22절
오늘 본문은 두 군데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요셉의 참모습을 살펴보려 합니다.
우리는 요셉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만 요셉의 인격을 본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과거에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복장이 터질 노릇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특별히 받던 요셉이 형님들의 질투와 시기 때문에 이렇게 비참해졌습니다.
노예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지난날을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노예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몸은 분명히 노예요, 확실한 노예였습니다만 노예 된 과거로부터 그 마음은 항상 자유 했습니다.
보세요. 그는 큰 미움을 받았습니다. 형들로부터요.
있을 수 없는 엄청난 과거지요. 이로 인해 억울하고 한이 맺힙니다.
그러나 한의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위대함이 있는 겁니다.
지난날의 잘못된 것?
그것을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해서 아무 일도 못합니다.
이것처럼 답답한 일이 없습니다.
과거의 잘못의 늪에서 자유 해야 하는데 그 누구를 원망하고 그 생각에 매여 있는 동안에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원한과 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과거로부터 온전히 자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미래가 문제입니다. 모든 문제는 소망의 문제입니다.
근데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전혀 소망이 없습니다.
노예는 노예입니다. 한평생 노예입니다.
노예로 죽을 것입니다. 참 비참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요셉, 그는 지금 노예입니다.
노예로 살다가 노예로 죽어갈 사람이었지만 그는 미래를 암담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신앙적 삶의 자세입니다.
또한 현재적으로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노예입니다. 근데 진실하고 신실한 노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신실합니다. 진실합니다.
제가 요셉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신실한 요셉을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창세기 39장에서 구절구절마다 강조되어 나타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2절 상 반절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3절을 같이 읽습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이 단어가 마지막 23절까지 계속 나옵니다.
이렇게 강조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 집에 복을 내리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요셉 때문에 하나님이 그 집에 복을 주시는 겁니다.
이것을 주인 보디발이 알아봅니다.
분명히 저 사람 요셉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집니다.
그래서 불과 17세의 소년이 그 집의 총무가 됩니다.
집안의 일을 다 맡아 하는 주인에게 신임받는 노예가 됩니다.
요셉은 신앙으로 모든 것을 극복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항상 자유 했습니다.
누가 하라 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신앙적 인격으로 주도적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주시지요.
창세기 45장 5절에 그의 유명한 신앙 간증이 나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요셉은 형들에게 팔렸다는 의식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 보내셨다는 의식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가 복된 삶을 사는 그리고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비결이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의식으로 사십니까?
과거에 매여 원망과 불평으로 사십니까?
승리는 주 안에서 자유 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은 요셉처럼 하나님 의식으로 살기를 축복합니다.
하나 더 생각할 것은 히브리서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아니 질문을 좀 바꾸어서 여러분이 생각하실 때 요셉은 과연 무엇으로 유명한 사람이라 생각하십니까?
억울하게 종으로 팔리고 감옥까지 갔으나 일약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파란만장한 삶에 기적적인 승리로 채워진 사람,
다른 사람이 해보지 못하고 올라보지 못한 자리에 섰던 사람,
그래서 우리의 대리 만족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까?
창세기에서 보면 요셉의 생애는 하나의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많은 설교자들이 히브리서에 나오는 요셉에 대한 구절을 읽고도 무조건 창세기로 가서 그의 일생에 본받을 만한 점들을 줄줄 꿰곤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그 설교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이 다라면 왜 하나님께서 히브리서의 말씀을 기록으로 남겼겠습니까?
창세기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러므로 우리는 히브리 기자가 말하는 요셉의 애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22절 말씀 같이 한 번 더 읽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히브리서 기자는 요셉의 생애에 일어났던 그 많은 드라마틱한 사건들?
그런 것들을 다 제쳐두고 왜 임종 시에 그가 남긴 말만 기록하는가?
히브리서 기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옛날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과거에 고생했던 이야기?
그런 가운데 그것들을 다 이겨내고 승리한 애기? 하고 싶어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요셉이 고생했던 애기들을 하면서 믿음으로 요셉은 총리가 되어라고 말할만 하지 않습니까?
근데 오늘 히브리서 가지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딱 한 마디 말만 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요셉이 죽을 때 믿음으로 떠나라 했다는 이 말밖에 안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늘 말씀에 핵심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지한 질문 하나를 던져야 합니다.
요셉이 어떻게 믿음의 족장이 될 수 있었는가?
요셉이 왜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인가?
그가 왜 유명한 자인가? 그가 애 굽의 총리가 되었기 때문입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유명한 자입니까?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성경을 다시 읽으셔야 합니다.
그가 믿음의 족장이라는 반열에 설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
그것은 그가 총리가 되어서가 아니고요.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알았습니다. 아니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4대 만에 가나안으로 돌아가리라는 그 말씀을 알았습니다. 아니 확고히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이 무엇을 붙들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지요.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안목으로 볼 때 요셉이 총리가 되었건 무슨 역사를 일으켰던 거기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오직 그의 믿음의 혜안으로 볼 때 요셉이 임종 시에 그 조상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지 않았다면
요셉 또한 애굽의 자식에 불과하고 애굽의 한 지도자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기에 믿음으로 라는 단어가 요셉의 생애에 기록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사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나는 죽으나의 신앙입니다.
이삭은 죽을 때에 이브라함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야곱 역시 죽을 때 아브람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요셉은 임종시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은 너희를 책임지신다는 믿음의 약속을 붙들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이 약속의 하나님을 붙들고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을 붙들지 마십시오. 그러면 실패합니다.
돈이 필요하지만 돈을 붙들면 아무 의미 없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시편 146편 3절에서 5절입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나는 죽으나 언제나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
나는 약하나 강하신 하나님! 나는 무지하나 다 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 여러분의 소망을 두고 산다면?
그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여러분의 꿈으로 삼고 산다면?
오늘의 요셉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그런 삶을 사는 은혜가 꼭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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