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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기 처음 목장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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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새새
댓글 0건 조회 442회 작성일 23-09-11 13:29

본문

두인균 목사입니다.
목원들을 기도와 사랑으로 섬기는 목자들을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믿음의 삶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이 있습니다!
본문 - 룻기 2장 3 - 16절

우리는 내가 뭔가를 많이 가져야만 남에게 뭔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전혀 없어도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 무엇이 있을까요?

먼저는 정답게 웃는 얼굴? 이건 줄 수 있지요.
격려의 말, 칭찬의 말? 이것도 줄 수 있잖아요.

생각해 보면 내가 특별히 가진 것이 없어도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만 더 예를 들면요? 따뜻한 눈길? 이것도 줄 수 있지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런 마음, 이런 모습으로 서로가 서로를 대할 때 상대방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줄 뿐만 아니라 더 밝고 더 따뜻한 우리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요.

이 시간 옆에 분 보면 환히 이렇게 서로를 축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나오는 인사법인데요.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 이런 모습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자,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갈 때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습니다. 또한 그곳으로 가 봤자 기대할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가겠다며 따라갔습니다. 육신적인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겠다는 겁니다. 나에게 주신 은혜만을 생각하고 다 버리고 가겠다는 고백이지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준비해 두셨습니까?
저들이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환경을 준비해 놓고 계셨고요. 나중에는 참으로 벅찬 하나님의 은혜들을 경험하게 하지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 한꺼번에 하나님의 뜻이 다 나타나거나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점차 적으로 입니다.

중요한 것은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하루하루의 은혜?
일용할 양식? 일용할 은혜가 주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근데 우리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 정도는 당연한 일이기에 그것보다 더 큰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 근데 우리는 오늘 당장 먹을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로 어려움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가령 병원 수술비나 시업할 자금 등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일용할 양식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면 다른 모든 필요한 것들도 채워주시는 겁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저는 과거에 너무나도 자신감이 넘쳐서 일용할 양식을 위해 별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5년 후나 10년 후의 큰일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가 영국에 있을 때 1년 반 정도 오직 하나님의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만 살게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밥 한 끼 먹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제 자신이 얼마나 교만했는지 철저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매 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오늘 하루 일용할 은혜가 있다는 사실로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다른 모든 것들도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매일매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로 살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3절 보십시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룻은 그냥 아무 사람의 밭에 나가 이삭을 주우려 했습니다.
근데 하나님은 이미 룻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먼저 룻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준비시켜 두고 계셨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예, 바로 보아스입니다.

3절 다시 보시면 룻이 보아스 밭에 이르게 된 것을 우연히 라고 하지요. 이것은 인간의 생각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손길로 룻을 그곳에 가게 만든 겁니다. 이어지는 4절도 보십시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여기 상 반절에 마침이라는 단어?
우리 성경과는 달리 원어가 갖는 의미는 매우 강합니다.
히브리어 원문대로 읽으면 웨 힌네입니다.
웨는 접속사이고 힌네는 감탄사입니다.
이탈리아어로 맘마미아가 어머나라는 감탄사이잖아요.

여기 힌네가 바로 그런 감탄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웨 힌네는 그러니 보라!
즉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보라가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8장 6절에 보면 에서가 본즉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단어가 8절에도 나옵니다.
근데 이때 본다는 말은 웨 힌네가 아닙니다. 여기서 본즉은 인간의 눈으로 주목한다는 뜻입니다. 에서에게는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고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지 말도록 당부하는 것을 인간의 눈으로 주목했을 뿐입니다. 그 결과 가나안 사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지요.

근데 창세기 28장 12절에 야곱이 꿈에 본즉 12절 중간에 또 본즉!
13절에 또 본즉이라고 나오는데 이때는 힌네라는 단어가 쓰입니다.

지금 야곱이 처한 상황을 아시지요.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야곱은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긴 형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죽이려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그는 형을 피해 밧단 아람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급하게 도망쳐 나온 야곱이 해가 지자 지치고 낙담한 마음에 그만 돌배게를 벤 채 잠이 들어서 그대로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소망이 없었습니다.

축복권을 얻어 축복의 땅에서 잘살려 했는데 쫓겨난 신세가 되었으니 자신이 얼마나 처량했겠습니까? 근데 자다가 꿈에 보니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근데 보라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늘에 닿아 있는 사닥다리를 보여주십니다.

이것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너가 도망가는 것 같지? 근데 아니야!
너의 인생, 내 손안에 있어! 내가 하늘의 은혜로 너를 붙들어 줄 거야!
그러니 땅만 보지 말고 하늘을 보고 살아야 한다!
이걸 하나님이 보여주려 하시는 것입니다.

자 다시 2장 4절을 보십시오.
웨 힌네? 하나님께서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을 볼 수 있겠습니까?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룻이 있는 밭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걸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룻이 이삭 줍기를 하러 보아스의 밭에 갔는데 마침 보아스는 세계 여행을 1년 동안 떠났더라! 그러면 룻의 인생이 얼마나 꼬일지 예측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룻을 모압 지방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하셨고 이삭을 줍는데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으로 인도하셨다! 보아스도 똑같이 거기로 오게 하셨다! 저는 그렇게 읽혀집니다. 즉 이렇게 요.

하나님께서 유력한 자 보아스를 거기 그 자리로 갔다놨으니 그러니 보라 하시는 겁니다.
이 기막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감탄하며 보도록 웨 힌네를 사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웨 힌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려 하는 자를 반드시 보상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절대 나 몰라라 하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웨 힌네! 나 하나님이 준비한 것을 보라! 먹는 것으로 끝내지 아니하시고 유력한 자를 이끌어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보라고 하시는 것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자라고 어떤 고난도 이기는 자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 인생 가운데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우연히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웨 힌네를 보여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믿음으로 사는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 더 생각할 것은 15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먼저 15, 16절 보십시오.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여러분은 이 말씀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저는 보아스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룻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보아스를 통해 룻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보아스가 이렇게까지 룻을 선대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셔서 하는 것이고 룻은 보아스를 통해 하나님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이 준비가 된 것처럼 순조롭게 풀리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수레에 짐을 가득 싣고 높은 고개를 올라갈 때에 누군가가 뒤에 힘껏 밀어주면 쉽게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룻이 믿음으로 나갔더니 모든 것이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보아스라는 마음씨 좋은 주인을 만났고요.
나쁜 사람들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보호도 받으며 또 볶은 곡식도 실컷 먹었습니다. 과연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길이 완전히 막혀 있어도 하나님에게는 길이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안 된다 하며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되는 거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한 번 부딪혀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룻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부모와 지금까지 살던 나라와 인연을 끊고 이스라엘로 온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곳으로 간다는 것?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일이지요.
그럼에도 룻은 자신의 부모와 고국을 완전히 떠나 알지 못하던 낯선 곳으로 왔습니다.

이와 동일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여기 떠난다는 것은 완전한 분리를 말합니다.
그리고 4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합니다.

여기 말씀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니까 그가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당연했다는 그런 식의 의미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지금 그가 말씀을 따라 가는 길밖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왜 그런가? 그가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믿음의 길은 그가 지금까지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가이드를 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만을 따라가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 안에 인본주의가 들어오면 안 된다고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입니다.
우리가 걷는 믿음의 길은 우리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인본주의가 들어오면 교회는 분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각자 자기 소견들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21장 25절입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렇다면 우리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성경 중심의 마인드를 말합니다.

흔히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 중심으로만 하면 되는 건가요? 됩니다. 왜 되는지 아십니까?

믿음의 길은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의 경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가는 것에 승리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따라갈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간 겁니까? 아니지요.
아브라함도 알지 못하는 길을 오직 말씀 붙들고 간 것이지요.
근데 그렇게 간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길이더라는 겁니다.

오늘 보아스도 룻에게 분명히 말하잖아요.
룻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길을 걸어왔다고요.

자기 부모, 자기 고국을 떠나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 온 것을 분명히 안다고!
그리고 룻이 그런 믿음의 길을 걸어왔기에 하나님께서 상주시고 복 주시기를 원한다고 말하지요.
이게 사실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보아스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길을 간 룻은 마땅히 복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크신 분입니다.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선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새로운 뜻에 자기 소견을 내려놓고 룻처럼 아브라함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복은 계속, 계속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여러분의 남은 삶 믿음의 길 걷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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